['사천N'과 함께] 이달의 인물 : 이현순·김지혜 씨 〈그리운 순이 농원 〉

'그리운 순이 농원'의  이현순·김지혜 씨 모녀. 사천을 대표하는 6차 산업 농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그들의 꿈을 응원한다.
'그리운 순이 농원'의  이현순·김지혜 씨 모녀. 사천을 대표하는 6차 산업 농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그들의 꿈을 응원한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지금 와서 보면 신이 내려주신 직업이에요. 그때 내가 어찌 그런 선택을 했는지, 기특합니다!” 스스로 택한 직업에 이 정도의 찬사를 보낼 이가 얼마나 될까. 더구나 그 직업이 농부라면? 여기 딸기 농사에 평생을 바친 여성 농업인이 있다. 그저 농사짓기에만 머물지 않고, 농사를 가르치는 일에도 열심이다. 이제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 그의 딸이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현순·김지혜 두 모녀의 농사일기를 들여다본다.

‘엄마를 도우면서  농사를 계속 지어 볼까?’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11월의 용현면 주문리 들녘.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딸기가 제아무리 달콤하기로서니 이렇게나?’ 농장의 교육장 문을 여니 곧 궁금증이 풀린다. 딸기 더하기 설탕! 딸기 잼을 만드는 작업에서 풍겨 나온 향기다. “호호, 깔깔.” 난생처음 해보는 딸기 잼 만들기가 재밌는지 체험객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이 농장은 이현순(1966년생) 씨가 운영하는 <그리운 순이 농원>이다. 큼지막한 간판이 없어도 입구에 붙은 여러 개의 이름표에서 이 농장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겠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증하는 ‘대한민국 대표 농장 스타팜’에,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딸기 지역 품목 실습장’·‘식생활 우수 체험 공간’·‘6차 산업 인증 사업자’·‘농업 현장 교수’, 그리고 농촌진흥청 지정 ‘농촌 교육 농장’에도 이름을 올렸다. 체험형 농장일 뿐만 아니라 가공산업에 교육사업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6차 산업형 농장이다.

이현순 씨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의 ‘2021년도 신지식 농업인’에 뽑히는 영예도 안았다. 불가사리 액비를 사용하는 등 그만의 독특한 딸기 재배법을 널리 알리고, 우량 딸기 모종을 보급해 ‘고품질 딸기 생산’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농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실습을 돕거나, 청년 농업인과 귀농인의 영농 정착을 돕는 일에도 열심인 그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표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은 역시 딸기다.

“딸기 농사요? 중학교 때 엄마를 도왔던 게 시작이었어요. 그땐 지금처럼 비닐하우스가 아니라 노지에서 재배했는데, 생계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죠. 물론 재미도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를 도우면서 농사를 계속 지어 볼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의 고향은 곤명면 삼정마을이다. 6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다섯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 홀로 꾸리는 가정이니 가난이란 꼬리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적성보다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느냐를 고려했다. 그렇게 택한 곳이 마산 한일여자실업고였다. 우리나라 최초 산업체 부설 학교인 이곳에서 일과 공부를 한꺼번에 붙잡았던 그였지만, 마음은 늘 농사를 향했던가 보다. 짬을 내어 집에 들를 때는 ‘4H 활동’으로 신이 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여성 농민 후계자가 됐어요. 여성으로는 사천에서 두 번째라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으로 치면 여성 농업경영인이죠. 처음엔 포도를 재배했어요. 고추와 참깨 농사도 짓고. 이른바 복합영농이었죠. 지금은 흔하지만 그땐 드물었던, 두둑을 크게 해서 농사짓는 걸 시도했더니 결과가 아주 좋았어요. 다들 ‘농사 잘 짓는다’고 말해주니까 어깨가 ‘으쓱’했었죠. (웃음)”

점점 힘에 부친다고 느낄 때쯤 지원군이 나타났다
그는 그 시절을 돌이키면서 “탁월한 선택이었다”라고 했다. “철이 빨리 들었던 것인지, 천지도 몰라 그랬던 것인지”라며, 그런 선택을 한 이유에 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노라고 했다. 그런 그가 딸기 농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결혼하면서부터다. 터는 곤명면 본촌마을 들녘이었다. 그러나 남편과 헤어지면서 지금의 농장으로 10년 전쯤 옮겨 왔다. ‘인생 2막’의 무대에서 체험형 농장 운영은 더욱 꽃이 폈다.

“수확이 막바지에 이르는 4~5월쯤이면 딸기의 상품성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아는 분들에게 그냥 와서 따 먹으라고 했는데, 이게 체험형 농장 운영의 시작이었어요. 오시는 분들이 자꾸 돈을 주고 가시는 거예요. 돈을 주니까 신경이 쓰여서 이것저것 편의시설을 더 갖추게 되고, 오늘에 이르게 됐죠. 지금은 딸기를 수확해 파는 일보다 체험하게 하고 가르치는 일이 더 재밌어요.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들에겐 농업과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딸기 농사를 배우려는 분들에겐 길잡이 노릇을 하는 거니까, 저 자신도 아주 뜻깊다고 생각하죠.”

5개 동으로 시작한 딸기 재배 시설은 어느새 12개로 늘었다. 여기에 5천㎡가량의 노지 육묘장을 별도로 운영한다. 그만큼 체험객의 발길도 늘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퍼지기 전까진 체험객이 연간 6~7천 명에 이르렀다. 많을 땐 하루에 200명을 넘겼다. 그가 점점 힘에 부친다고 느낄 때쯤 지원군이 나타났다. 딸, 지혜(1990년생) 양이었다.

“농사를 돕는 건 늘 하던 거죠. 그러다 5년 전부터는 ‘단순히 돕기보다 내 일로써 한번 해보자’ 이런 마음을 먹었어요. 그냥 농사라면 관심이 없었을 텐데, 체험교육에 가공식품까지 만드는 일이니까. 대학에서 공부한 것도 있었고요. 그렇다고 쉽게 마음먹은 건 아녜요. 엄마가 늘 새벽부터 밤까지 일에 빠져 있으니까, 그런 모습이 싫었거든요.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앞으로 비전은 분명히 있겠다 싶어서 선택했어요.”

지혜 양은 대학에서 호텔 조리학, 6차 산업학을 전공했다. 체험 농장을 운영하는 엄마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테다. 농장에서 그의 직함은 ‘교육팀장’. 사실상 체험 프로그램을 전담하고 있다. 수확한 딸기를 농협 로컬 매장에 내거나 농장에 필요한 온갖 서류를 꾸미는 일도 지혜 양의 몫이다.

‘저 농장에 가면 뭐든 믿고 살 수 있다.’
“엄마한테서 월급을 받고 있으니까, 아직은 완전히 독립했다고 볼 순 없죠. 일손이 바쁠 땐 딸기 수확과 선별도 해야 하고. 또 농업인 교육은 엄마가 해야 해서 일이 섞여 있어요. 반쯤 동반자? 그게 적당한 표현일 것 같네요. 앞으론 더 구분해야죠. 그래야 덜 싸울 테니까. 저는 엄마처럼 일에만 빠져 있기 싫어요. 목표나 꿈, 이런 것도 거창하지 않거든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여유를 갖고 싶달까? 그런 정도예요.”

말과 표정에서 수줍음이 묻어나지만, 엄마의 삶과 구분하고픈 지혜 양의 야무진 마음도 드러난다. 그 까닭도 어렴풋이 잡힐 듯하다. 그만큼 엄마의 삶은 억척스러웠고 고달팠으리라.

“싸울 일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저의 기대와 욕심이 늘 컸던가 봅니다. 그래도 고마운 일이죠. 딸이 곁에서 도와주니까. 사실 인력난 때문에라도 가족농으로 가야 하거든요. 이번에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귀해지면서 농사를 포기하고 비닐하우스를 내놓은 농민들이 많아요. 특히 농업으로 6차 산업을 꿈꾼다면 가족 없인 힘들죠. 지혜는 이제 엄연한 사업 파트너랍니다!”

이렇듯 의기투합한 ‘순이 농원’의 두 모녀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딸기 재배 시설 가까이에 전문 체험교육장과 농산물 판매장을 지어 조만간 문을 열 예정이다. 체험교육장은 대형 유리온실에 바나나·커피·올리브·망고 같은 아열대성 나무, 연못 등으로 꾸며 쾌적한 정원 느낌을 준다. 이곳은 앞으로 카페로도 쓰일 참이다.

 

“농업에는 의식주가 다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잘만 하면 돈이 안 될 수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늘 판로죠. 농민이 유통에 끼어들기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가공과 판매까지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체험객들이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저 농장에 가면 뭐든 믿고 살 수 있다.’ 이런 믿음을 주고 싶어요.”

‘억척 농부’ 이현순 씨의 남은 목표는 분명하다. <그리운 순이 농원>을 사천을 대표하는 6차 산업 농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나아가 그 열매를 지역민들과 나누고 싶다. 다른 농업인의 농산물, 가공품을 같이 판매함은 물론이요, 음식이나 특산품 개발에도 나서고픈 마음이다. 그 끝에서 농업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상품’으로 꽃필 거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런 그에게 딸 지혜 양의 당부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우리, 제발 쉬어가면서 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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