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이야기 -

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훈민정음』 창제 때(1443년) 사용한 닿소리(자음)와 홀소리(모음)는 모두 28자였습니다. 닿소리는 지금 쓰고 있는 음운에 ‘ㅿ(반치음), ㆁ(옛이응), ㆆ(여린히읗)’이 있어 17자였고, 홀소리는 ‘ㆍ(아래아)’가 있어 11자였습니다.

‘여린히읗’은 15세기 초부터 제한적인 쓰임새를 보였고 ‘반치음’은 15세기 후반에, ‘옛이응’은 17세기에 사라졌으며 ‘아래아’는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1933년)하면서 공식적으로 없앴습니다. 

현대 우리말에서 사용하는 ‘이응(ㅇ)’의 쓰임은 매우 독특합니다. 초성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고 종성에서는 ‘응(ŋ)’ 소릿값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는 ‘이응(ㅇ)’과 ‘꼭지이응’이라고도 부르는 ‘옛이응(ㆁ)’의 역할이 또렷이 달랐는데 이를 ‘이응(ㅇ)’으로 합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옛이응’은 초성자음으로 만들었지만 실제 초성에서는 음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응(ㅇ)’은 받침 글자인 종성으로도 썼지만 이는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 따른 것이기에 지금과는 달리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소릿값이 없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사라진 것으로 보였던 ‘옛이응’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언어에서 그 명맥을 은밀히 유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소리자리에 쓴 ‘옛이응’이 앞 음절에 받침이 없을 때 모음충돌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 발음의 편의를 주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어휘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깁니다. 

우리 물고기 이름에는 ‘-어(魚)’로 끝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갑오징어, 고등어, 광어, 농어, 다랑어, 문어, 민어, 방어, 뱅어, 병어, 복어, 붕어, 빙어, 상어, 송어, 숭어, 연어, 열목어, 오징어, 은어, 잉어, 장어, 전어, 청어, 홍어’ 따위. 

이 낱말 중에는 ‘옛이응’이 설 자리를 잃어 스스로 사라진 경우가 있습니다. 설 자리를 잃었다는 말은 앞 음절에 받침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광어, 다랑어, 방어, 병어, 빙어, 송어, 연어, 열목어, 은어, 장어, 전어, 청어, 홍어(洪魚)’가 그렇습니다. 

앞 음절에 받침이 없는 경우 ‘옛이응’은 앞 음절 받침의 빈자리로 이동해 제 음가를 드러냅니다. 이를테면 ‘고도어(古刀魚)〉고등어, 노어(鱸魚)〉농어, 부어(鮒魚)〉붕어, 사어(鯊魚)〉상어, 수어(秀魚)〉숭어, 리어(鯉魚)〉잉어’의 변천 과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때 ‘-어’〉‘-어’에서 앞의 ‘ㅇ’은 ‘옛이응’을, 뒤의 ‘ㅇ’은 (소리 없는) ‘이응’을 나타냅니다. 

덧붙여 홍어를 가리키는 한자가 ‘하어(荷魚)’로 이것이 홍어’로 변했다면 이 역시 ‘옛이응’의 소릿값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습니다. ‘백어(白魚)〉뱅어’는 앞 음절 받침 ‘ㄱ’이 약화하여 ‘옛이응(ㆁ)’에 동화하면서 음가가 살아남은 경우입니다. 

언어도 계절을 탑니다. 언어도 봄이면 움이 트고 겨울이면 피폐해져 움츠러듭니다. 언어의 계절은 언중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언중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잊힌 말일지라도 제 생명력을 놓지 않으려는 끈끈함은 잃지 않습니다. 표현력이 풍성해지는 요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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