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달의 인물 : 보컬리스트 김규민 씨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삶은 배움의 연속’이라지만, 10대와 20대에겐 참으로 가혹할 말이다. 분명한 목표나 꿈이 없이, 멍하니 책만 들여다보는 처지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럴 땐 책상을 박차 버릴 필요가 있다. 때론 낯선 세상에서 몸으로 부딪어야 미래로 나아갈 길이 또렷해지는 법이다. 거리에서 노래하는 가수(=보컬리스트) 김규민 씨의 귀한 경험이기도 하다. 그의 청춘을 살짝 엿본다.

김규민 씨는 젊은이가 점점 줄어드는 사천에서 감미로운 노래로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고 싶어 한다.
김규민 씨는 젊은이가 점점 줄어드는 사천에서 감미로운 노래로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고 싶어 한다.

도전에 진심인 편
김규민 씨는 1993년생이다. 삼천포에서 태어나 노산초-삼천포제일중-용남고를 다녔다. 2013년에 경남과학기술대학교(지금의 경상국립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해 1년간 공부했다. 그의 대학 공부는 이것이 전부다. 군 복무를 위해 휴학한 뒤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퇴했다. 아주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노라고 말하는 그에게 그 시절, 어떤 마음의 변화가 일었던 걸까.

“군 복무를 하면서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라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같이 생활하던 동기 덕분이었죠. 전역하면 꼭 도전해보리라 마음먹었어요. 전역 뒤엔 비용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꿈을 키웠는데, 갑자기 벽이 나타난 거예요. ‘워홀로 2년간 휴학은 안 된다’는 얘길 대학으로부터 들었죠. 어렵게 마음먹은 만큼 한번 나가면 최소한 2년 정도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고민이 됐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았어요. ‘대학 공부는 다음에 하지 뭐.’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워홀은 ‘워킹 홀리데이’의 줄임말로, 해외를 여행하는 젊은이가 방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비자를 말한다. 보통의 관광비자로는 방문국에서 노동이 금지되어 있으나 국제 친선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예외적인 제도이다. 일정한 나이를 넘어서면 비자를 신청할 자격조차 없으니, 젊은이들 사이에는 워홀을 대단히 선망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신분이 학생이라면 대개 기간을 1년 정도만 신청한다. 남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김규민 씨는 미련을 싹둑 잘랐다. ‘2년이면 자동 퇴학’이란 대학 측 설명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조차 싫었다. 그만큼 워홀에 진심이었던가 보다. 그는 7개월의 준비 끝에 친구와 호주로 떠났다.

언제나 노래에 진심이라고 말하는 김규민 씨
언제나 노래에 진심이라고 말하는 김규민 씨

워킹홀리데이 2년, 자신감 뿜뿜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영어 실력은 여전히 꽝이었죠. 햄버거 하나 사 먹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면 믿으시겠어요? 우리말이 매우 서툰 외국인 노동자, 거기선 제가 꼭 그런 신세였어요. 하지만 살아남아야 하고 절실하니까 영어 실력도 조금씩 늘더군요. 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처음 1년은 그렇게 금방 지나갔습니다.”

호주에서의 시간이 1년에 가까울 무렵 김규민 씨는 다시 한번 결단의 순간을 맞았다. 워홀을 함께 시작한 친구가 계획을 바꿔 한국으로 일찍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굳힌 까닭이다. 그는 같이 들어가느냐, 아니면 홀로 남아 2년을 채우느냐를 두고 갈림길에 섰다.

“사실 고민스러웠죠. 애초에 워홀을 계획하고 주도한 쪽은 친구였기에 홀로 남기가 두려웠거든요. 하지만 남았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싶었고, 무엇보다 친구로부터도 독립하고 싶었어요. 홀로 남으니까 도전정신 같은 것도 더 생기고, 현지인들과 더 부대끼게 되더라고요. 점점 자신감이 차올랐죠. 지금 생각해보면 워홀 2년째의 경험과 시간이 귀국한 뒤 한국 생활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워홀을 끝내고 국내로 복귀한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그 낯선 땅에서 버젓이 살아 돌아왔는데, 우리나라에서 뭘 못해!’ 이런 마음이었단다. ‘자신감 뿜뿜’ 그대로,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무난히 직장을 구했고, 한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그러다 뜻밖의 세상을 만났다.

길거리 버스킹 중인 김규민 씨
길거리 버스킹 중인 김규민 씨
무대에서 노래하는 김규민 씨
무대에서 노래하는 김규민 씨

서브 보컬부터 보컬 버스킹까지
“취미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우연한 기회가 생겼어요. 아버지가 활동하던 ‘미라클’이란 음악 밴드가 비토 별주부전 축제 무대에 오를 때 서브 보컬(=보조 가수)을 맡게 된 거죠. 대중 앞에, 그것도 준비된 무대에서 노래해 본 적은 없지만, 학창 시절에 노래를 제법 부른다는 얘기는 들었거든요. 겁 없이 용기를 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기분이 아주 짜릿했어요. ‘이거 뭐지?’, ‘좀 더 해볼까?’ 이런 마음도 생겼죠.”

이전의 삶에서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을 겪자 김규민 씨의 관심은 음악 활동으로 급격히 쏠렸다. 이후 온 세계를 덮쳤던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장애물도 열정으로 가득한 그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밴드 활동? 노래하는 맛? 이런 것에 막 눈을 떴는데,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없는 거예요. ‘미라클’도 사실상 활동 중단에 들어가 버리고. 속상했죠. 그러다 2021년 중반부턴가,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조금씩 완화될 때 ‘미라클’ 회원 몇 분과 버스킹(busking)을 시작했어요. 토요일마다 거의 매주. 그제야 숨이 좀 트였어요.” 

버스킹은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대규모 공연도 가능하겠으나, 대체로 홀로 또는 몇몇이 하는 소규모일 경우가 많다. 그만큼 공연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이나, 쉽게 만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김규민 씨가 말하는 자신의 버스킹 스타일은 ‘MR 버스킹’이다.

“‘너 피아노 잘 치니? 기타는?’ 하고 물으면 선뜻 나서는 친구가 거의 없어요. 하지만 ‘노래 잘하는 친구?’ 하면 엄청 많거든요. 악기는 잘 못 다뤄도 자신의 목소리는 악기처럼 잘 다룰 수 있으니까, 누구나 쉽게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거죠. 반주만 있으면 되니까요. 그런 매력에 저도 요즘은 혼자서 버스킹 할 때가 많아요.”

목표는 ‘사천 기반, 유명 가수’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은은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드곡들이다. 이른바 대중가요. 나아가 가만히 서서 노래만 하기보다 관객과 대화하며 소통하길 즐긴다. 그게 ‘김규민 보컬리스트’의 공연 스타일이다. 나아가 사천시를 위해 문화관광 쪽으로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최근에 <꽃이 되었네>라는 싱글 앨범을 발표했던 게 계기가 됐다.

“제 공연 영상을 본 한 작곡가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덕분에 앨범을 냈는데, 5년 전 호주로 떠날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죠. 늘 하던 버스킹과도 색다른 기분이었어요. 이 일로 저의 미래에 관한 생각도 새롭게 하게 됐어요. 작사와 작곡을 겸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될 뿐 아니라, 사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나름의 유명 가수가 되자는 마음이죠. 그쯤 되면 지역사회에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

그는 최근 지역의 젊은 보컬리스트들을 모아 새로운 활동에 들어갔다. 팀 이름이 ‘미라클’이다. 비록 밴드 형태는 아니지만, 아버지와 선배 세대의 음악 활동을 잇는다는 느낌으로 그들에게 양해를 구해 지었다. 젊은이가 줄어 도시가 점점 활력을 잃는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많은 요즘, 미라클의 감미로운 노래로 지역사회에 작은 변화라도 생긴다면 참 좋을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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