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⑧대곡숲~대곡저수지

정동면 대곡마을의 마을숲. 한실 솔숲으로도 부르는 이 숲은 좋은 기운을 지키고 나쁜 기운은 막는 비보림(裨補林) 역할을 한다.
정동면 대곡마을의 마을숲. 한실 솔숲으로도 부르는 이 숲은 좋은 기운을 지키고 나쁜 기운은 막는 비보림(裨補林) 역할을 한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정동면 대곡리는 골짜기가 넓고 커서 예전에 한실이라 불렀다. 한실마을 입구를 지키고 선 솔숲에 들었다. 각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율동! 구불거리는 솔의 몸통들이 서로를 조율한다. 솔숲 너머로 고개를 내민 앞산 능선마저 율동을 맞춘다. 한국의 미는 자연을 닮은 유려한 곡선에서 나온다고 했지.

한실 솔숲은 수구막이를 위한 비보림이다. 마을이 곡식을 고르는 키(챙이) 모양이라 재물의 기운이 빠져나가면 안 된다. 그래서 입구에 솔숲을 만들어 물이 오래 머물렀다 나가도록 했다. 물은 풍수에서 재물로 본다. 또 솔숲은 훤히 뚫려있는 마을을 가려준다. 솔숲의 경계는 안과 밖을 구분 지어 잡스러운 기운을 막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마을숲은 주민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파란 하늘 사이로 흰 구름 빵긋 웃고, 아득한 고향의 멧비둘기 소리 귓가에 내려앉는다.

정동면 대곡마을의 마을숲.
정동면 대곡마을의 마을숲.

솔숲은 정화의 기운을 지닌다. 숲속 정자에 앉아 성성한 솔바람 소리를 듣는다. 솔바람이 온 세포를 감돌아 마음이 선선해진다. 우리 조상님네들은 아이를 잉태하면 솔숲에 들어 솔바람 태교를 했다. 원한과 시기심, 부질없는 잡념을 솔바람에 날려보는 거라 한다.

높은 소나무 가지에 걸린 까치집.
높은 소나무 가지에 걸린 까치집.

숲을 거닐다가 대장 소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어림짐작으로도 숲에서 제일 큰 나무다. 높은 가지에는 까치집 하나 걸려 있다. 솔숲에서 까치집을 보는 것은 낯선 장면이다. 까치가 우뚝 솟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것을 종종 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를 꽤 좋아하는 족속이다. 올려다보면 사물이 잘 보이지 않지만, 내려다보면 빤히 보인다. 산 정상에 올라보라! 시야가 넓은 만큼 활동반경도 커진다. 까치는 맹금류가 아니지만 똑똑한 지능으로 자신의 공간을 잘 활용하면서 살아간다.

솔밭 곁에 있는 감나무 농장에서는 감이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치장을 했다. 때를 알리는 거다. 파래서 떫던 열매는 이제 당도 높은 과일로 얼굴색을 바꾸었다. 식물은 새들을 위해 붉은 열매를, 포유류를 위해서는 주황색 열매를 맺는다지. 이 모두가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려는 어미의 지극한 정성과 노력의 결과물인 것을.

대곡저수지 전경.
대곡저수지 전경.

마을을 지나 대곡저수지 위로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계절을 재촉하는 바람이 분다. 저수지 물결마저 덧없이 일렁인다. 길가에 핀 쑥부쟁이는 가냘픈 고개를 흔든다. 말라비틀어진 왕벚나무 이파리 몇 개 바람의 길을 따라간다. 사마귀 한 마리 따뜻한 길가에 나와 한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알 속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겨두고 미련 없이 사라져가는 생명들.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인가? 돌고 도는 자연의 질서인가? 습기 찬 길가에 늦은 물봉선이 피어 붉은 입술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가을도 한참이나 익어서 이젠 햇빛의 알갱이들이 따습게 느껴진다.

쑥부쟁이
쑥부쟁이
물봉선
물봉선

저수지 위 분지처럼 펑퍼짐한 지형에 마음을 들인다. 농장 주인이 한 철 꽃구경을 즐긴 수국 가지를 잘라내고 있다. 얘기를 나눠보니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원예학과를 나오셨단다. 가꾸어놓은 조경수들이 선남선녀 같다. 선인장을 담벼락에 심어놓았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이 선인장은 제주 한림읍 월령리에 자생하는 종이다. 사람들이 백년초라 부르는데, 염증을 없애고 열을 내리는 데 민간약으로 쓴다고 한다.

백년초
백년초
대곡저수지 옆 소나무
대곡저수지 옆 소나무

이 농장 밭 가에는 야생으로 자란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몇 년이나 되었을까요?” 하고 물으니 “3백 년쯤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신다. 속으로 ‘그리는 안 됐을 거 같은데요?’ 하고는 가까이 다가서 보니 둥치가 굵다. 그만큼 됐을지도 모르겠다. 한실 솔숲은 한 200년쯤 되었다고 한다. 둘 다 보배롭다.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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