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⑤다솔사~보안암

 

다솔사와 녹차밭
다솔사와 녹차밭

만해 한용운 스님의 항일운동이 형형하게 서린 곳! 굴곡 짙은 한 시대의 역사를 증언하는 다솔사를 찾았다. 만해 스님은 다솔사에 안심료를 짓고 12년간 은거하며 지내셨다. 이곳은 불교 항일운동 비밀결사조직 ‘만당’의 본거지가 되었다.

황금측백나무
황금측백나무

봉명산 둥그스름한 산마루를 지붕처럼 이고 있는 안심료 툇마루에 살포시 앉았다.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빛이 나는 그러한 건물이다. 마당 앞에는 황금측백나무 세 그루가 높은 울타리로 서 있다. 1939년에 만해 스님의 회갑을 기념해 심었단다. 그리고 80여 년 세월이 흘러 울창하게 자랐다. 고독한 나의 방에 생기가 돌듯 가슴이 팽팽해지는 순간. 고개 들어 바라보니 납작한 이파리의 끝이 황금으로 빛나고 있다. 

안심료
안심료

만해 스님의 명상길을 따라 적멸보궁 뒤 차밭 한가운데 섰다. 저 멀리 동으로 겹겹의 줄을 이은 능선들이 하늘에 잇닿았다. 초록으로 구불거리는 차밭 아래로 안심료 문살이 눈길을 마주한다. 동글동글 차나무 이파리는 진초록 찻물을 머금었다. 눈으로 마시는 차 한잔에 생기가 돋는다. 선선한 바람이 이마를 스쳐 간다. 다솔사 차밭은 주지를 지냈던 효당 최범술 선생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차밭을 가꾸고 책을 지어 맥이 끊어진 우리 차문화를 일으키고 대중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차나무엔 뽀얀 꽃망울이 ‘초록초록’ 맺히기 시작한다. 하얗고 정갈한 차꽃은 가을 산사를 더욱 맑고 향기롭게 할 게다. 가지엔 작년에 꽃을 피웠을 도톰하고 둥근 열매가 매달려 있다. 차나무는 어찌 열매와 꽃을 동시에 매달고 있을까? 근원에 대한 고개 숙임은 아닐는지.

 

절 뒤쪽으로는 굴참나무가 많다. 그런데 이 나무들 대부분이 코르크가 벗겨진 흔적을 안고 있다. 이 흔적은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일로 추측되고 있다. 일제는 군수물자로 쓰기 위해 우리 산하의 굴참나무 코르크를 벗겨 갔다고 한다. 소나무 몸통에 상처를 내어 송진을 받아 간 것과 같은 사정이다. 코르크 합판은 내장재 등으로 쓰이고 송진은 정제하여 항공유로 쓰였단다.

다솔사에서 보안암으로 가는 길 중간에 누군가가 돌그릇을 만들어 도토리를 한가득 담아 놓았다. 다람쥐를 위한 밥상인가 보다.
다솔사에서 보안암으로 가는 길 중간에 누군가가 돌그릇을 만들어 도토리를 한가득 담아 놓았다. 다람쥐를 위한 밥상인가 보다.

절 뒤쪽으로 난 숲길로 들어선다. 잠시 잠깐 남해의 조망이 탁 트인 곳에 돌탑 한 무리가 드러난다. 그 곁에 누군가 돌그릇을 만들어 도토리를 한가득 담아놓았다. 어느 보살님의 다람쥐를 위한 밥상인가? 굵은 굴참나무에서 실한 도토리가 ‘툭~’ 하고 떨어져 내린다.

정금나무
정금나무

밋밋한 길가에서 정금나무 열매가 까맣게 익어 ‘나를 따가세요’ 하고 눈인사를 한다. 이제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날 때가 된 거지. 우리도 새들도 먹을 수 있는 시큼한 열매다. 

개서어나무
개서어나무

보안암 팻말을 따라 평탄한 숲길을 걸어 나간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내뻗은 평범한 솔숲이다. 마치 안심료 툇마루처럼 꾸미지 않은 일상이 다가선다. 솔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어우러지니 마음이 낭낭한 가을 한때다. 보안암으로 가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커다란 개서어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개서어나무는 나무껍질이 독특하다. 세로로 난 희끗한 선들이 매끈한 질감과 어우러져 섬세한 눈길을 끈다. 나무껍질의 개성은 한겨울에 도드라진다.

보안암과 석축
보안암과 석축

보안암 오르는 돌계단은 넓적돌을 그저 그냥 척척 갖다 놓았다. 멋을 부리지 않아 더욱 자연스러운 멋이 드러난다. 계단을 오르면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높은 축대로 쌓은 돌담이다. 자연석을 단정하게 쌓아 올린 솜씨가 일품이다. 이 소박한 아름다움! 보안암 좁은 마당에 올라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봉명산 능선을 바라본다. 풍만한 선의 운율이 여인의 젖가슴을 닮아있다. 부드러운 님의 침묵 속에 날카로운 키스를 감추어 둔 만해 스님의 웅지(雄志)랄까? 봉황의 울림이 크다. 다솔사 역사 문화의 울림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아~ 하늘 높은 가을이로구나.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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