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④온정 저수지

 

칡꽃
칡꽃

문득 마음 따라 아침 길을 나선다. 온정리 마을 어귀 대밭에 얽힌 칡꽃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둥근잎나팔꽃 한 송이 붉은 얼굴로 해맑게 웃는다. 두해살이 왕고들빼기는 키를 훌쩍 키워두고 우윳빛 꽃잎을 활짝 피웠다. 로제트로 엎드려 긴 겨울을 이겼기에 높은 하늘을 마주 보는 거다. 모두 우리 산야에서 지천으로 마주하는 들꽃 풍경이다. 흔하지만 다가서 보면 또 새롭고 친근한 마음이 든다.

왕고들빼기와 둥근잎나팔꽃
왕고들빼기와 둥근잎나팔꽃

 

 

 

용현면 온정 저수지 풍경.
용현면 온정 저수지 풍경.

어느새 어릴 적 추억을 담은 연못에 접어들었다. 그때는 ‘서택이연못’이라 불렀는데 안내판을 보니 ‘온정 저수지’로 되어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1923년 저수지를 만든 일본인의 이름(서택효삼랑)을 따서 처음엔 이름을 서택저수지라 지었다고 한다. 쌀을 더 많이 가져갈 목적으로 저수지를 만든 거라지. ‘아, 그래서 온정 저수지로 바꾼 거였구나!’

마름
마름

연못을 가로지르는 인공 산책길을 걷는다. 수면을 바라보니 주변에 열매 몇 개가 둥둥 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름 열매다. 열매의 양 귀퉁이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이 가시가 새의 깃털에 붙어서 이동을 한다니 참 기발한 씨앗의 여행법이다. 가시는 또 새들이 열매를 쉽게 못 먹게 하는 역할도 한다. 유래를 찾아보니 마름은 말과 밤의 합성어에서 왔단다. 말이 물풀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니 말밤은 물에서 나는 밤이 되겠다. 예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 이 열매를 주우러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몰밤이라 불렀다. 말밤=몰밤! 유래를 알고 나니 더욱 정감 있는 이름이다. 몰밤은 배고픈 시절에 삶아서 먹었다.

마름 열매
마름 열매

이 몰밤은 물새들이 즐겨 먹는 식량이기도 하다. 특히나 겨울철에 더욱 귀한 먹이다. 도구를 쓰기 시작한 인류는 야생의 생명과 끊임없이 먹이 경쟁을 해왔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백전백승. 야생의 생명들은 농지와 도시 언저리에서 점점 밀려났다. 예전에 99%였던 야생동물의 생물량이 지금 1%로 줄었단다. 99%의 생물량을 인류와 가축이 채운 거지. 불과 몇 종의 동물이 생태계를 우점하는 것은 엄청난 폭력이 아닌가! 그 위력과 욕망 덕분에 지금 우리 인류는 파국을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물 종 다양성의 감소와 기후 위기! 생태계는 맥없이 허물어지고 푸른 별 지구는 멍이 들었다.

노랑꽃창포 열매
노랑꽃창포 열매

노랑꽃창포 열매는 주둥이를 딱딱 벌리고 동글납작한 씨를 길바닥에 토해 놓았다. 씨는 물 위를 잘 떠다니니 물을 이용해서 씨를 퍼뜨리려는 계획인 거지. 물가를 무성하게 드리운 칼잎은 주변을 독식하듯 차지한다. 산책길을 돌아 나오면서 낚시꾼이 잡은 물고기를 들여다본다. 배스! 토종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는 녀석.

 

서쪽 연못가로 심어놓은 커다란 연밭에 다가선다. 우리나라에 야생 상태로 자라는 연꽃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용할 목적으로 생활 터전 가까이 옮겨온 오래된 관상식물인 셈이다. 붉은 입술 향긋한 꽃은 벌써 지고 까만 눈동자 성성한 씨방 줄기가 곧추서 있다. 그 아래 널찍한 잎사귀들이 서걱거리며 고개를 흔든다. 바람 따라 너울춤을 추는 연잎들! 인공 구조물에 가만히 앉아본다. 저 멀리 수면 위로 바람이 달려간다. 연잎의 방사형 줄무늬 속에도 바람이 일으키는 동심원이 퍼져 나간다.

연꽃
연꽃
연꽃은 더러운 물에 살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오염되지 않는다. 세상을 정화하는 처염상정(處染常淨)! 다가오는 위기에 대응하고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는 일, 어쩌면 우리 앞에 닥친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닐는지?! 연못 언저리 팽나무 사이에서 참새 한 무리 짹짹거린다. 국토를 종단하는 산업의 정맥 3호선 국도에 차들이 쌩쌩 달려가는 소리 들려온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