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공원 끝자락에서 시작되는 산책로와 둑길
와룡산 능선과 하늘 담은 저수지는 한 폭의 그림
※ ‘사천여성회가 만난 사천·사천사람’ 코너는 사천여성회 글쓰기 모임에서 채우는 글 공간입니다. 사천의 여러 동네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
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와룡’이라 이름 붙여진 와룡산 자락에 와룡저수지가 있다. 와룡저수지는 1959년에 만들어졌고, 13.62ha 크기의 저수지에 담긴 물은 와룡동, 향촌동, 노룡동 등 6개 동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대고 있다. 용두공원 일대 친수공간에도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2010년까지 수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수질도 좋은 저수지이다.
용두공원 끝자락 풍차 광장 뒤로 난 구름다리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와룡저수지가 보인다. ‘마의 구간’이라고 불리는 오르막길을 성인인 나는 무릎에 힘을 팍 주고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가는데, 아이들은 뛰다시피 올라간다. 누가 먼저 오르는지 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자면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마의 구간’이 아닐까 싶다.
저수지 앞쪽으로는 다양한 운동기구들과 함께 잠깐의 쉼을 주는 정자와 긴 의자도 놓여 있다. 날이 좋을 땐 와룡산 능선과 하늘의 구름이 저수지에 그대로 반영되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연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보지만 눈에 담긴 풍광을 사진에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그저 벤치에 앉아 겸손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보는 기쁨을 누린다.
산책로는 커다란 저수지를 빙 둘러 나 있어서 저수지와 주변의 다양한 모습들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 저수지 반대쪽의 나무들이 비스듬히 자라나 터널길을 만들어 놓았다. 이 길로 들어서면 그때부턴 시각. 청각, 후각이 호강한다. 아직 여름옷을 다 벗지 못한 나무들의 녹음에 시야가 맑아진다. 이제 곧 알록달록 가을을 준비할 것이다.
숲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새소리, 풀벌레 소리, 물소리는 녹음해 두고 싶은 자연의 ASMR이다. 쉬지 않고 일을 찾아야만 할 것 같은 시계 소리가 아니라, 새와 벌레들의 즐거운 이야기가 되고 물소리는 음악이 되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흙냄새, 바람에 닿는 나무 냄새, 일렁이는 물 냄새를 크게 들이마시면 코를 통과한 산소 방울들과 함께 폐를 거쳐 혈관 속에 알알이 박혀 내 몸이 청정구역이 되는 기분이다.
꽃댕강나무가 빽빽한 코너를 돌면 대나무 군락이 보인다. 어느 봄날, 이곳을 지나다 대나무 숲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와도 너무 놀라지 말자. 봄 죽순을 캐시는 할머니다. 죽순이 탐나 ‘나도 캐볼까’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숲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 사실 이 지역은 야생의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어 봄이나 여름에는 뱀이 출몰하기도 한다.
걷다 보면 탐나는 남새밭을 가진 주황색 기와집이 보인다. 6월이면 이 집 주변으로 탐스러운 수국을 볼 수 있다. 정성스레 가꾸셨을 집주인 덕분에 봄을 느끼며 눈 호강을 한다. 담벼락엔 요즘 보기 드문 탱자나무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고동을 저 탱자나무 가시로 까먹던 기억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와룡골이라 불리는 와룡마을이 있다. 마을에 묘목장이 있어 금목서, 은목서, 동백나무, 남천나무 등 많은 묘목을 키우고 있다. 가을이 무르익을 때 이곳을 지나면 금목서, 은목서 향기에 취한다. 어떤 향수와 비교되지 않을 이 좋은 향을 내 고장에서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
와룡골이라는 표지석 뒤로 청룡사 가는 길도 보인다. 봄이 되면 겹벚꽃으로 유명한 청룡사에서 ‘인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이 길은 북적인다. 와룡골 논에는 여름날 뜨거운 태양 양분을 먹은 나락이 영글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논과 어울리는 소담한 시골 버스정류장도 있다. 인적 드문 정류장이지만 삼천포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검은 봉지를 든 할머니들이 버스에서 내리거나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류장에서 조금만 더 걸어 내려오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이 나무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때 수령이 310년이었으니 지금은 350살이 되었다. 가늠할 수 없는 350년이라는 세월 때문인지 나무를 우러러보게 된다. 보호수 옆에는 돌무덤이 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돌을 던져 행운을 점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제 단풍나무들과 마주하고 있는 데크 산책로가 시작되고 이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와룡저수지 둑길과 만난다. 둑길을 따라 되돌아 걸어와도 되고 계단 길로 내려와도 된다.
와룡저수지 산책로는 용두공원에서부터 걸으면 대략 30분~40분 정도 소요된다. 아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어도 좋고, 벗들과 일상의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걷기에도 좋고, 운동 삼아 파워워킹을 하기에도 좋은 길이다. 그때마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할 수 있어 딱 좋은 둘레길이다.
이제 걷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이번 가을에는 이곳 와룡저수지에서 삼천포의 가을을 만끽해 보는 게 어떨까.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