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오후 네시

『오후 네시』아멜리 노통브 저 / 김남주 역 /열린책들/ 2017
『오후 네시』아멜리 노통브 저 / 김남주 역 /열린책들/ 2017

[뉴스사천=김효경 사천도서관 글벗 독서회원] 이야기는 평생 학생들에게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치다가 퇴임한 노인이 아내와 함께 조용히 여생을 보낼 집을 찾던 중 첫눈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년이 된 평교사 할아버지가 평소에 못마땅하게 여겨 왔던 소란스러운 도시를 벗어나 마침내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내 외에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고 아내 하나로 충분했다는 주인공. 주인공은 평생 자기 세계를 너무도 견고하게 구축해 놓았으며, 고지식하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기에 누가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이제 곧 행복한 우리 집에서 여생을 평화롭게 마무리할 일만 남은 ‘오후 네 시’. 그는 하늘이 막 석양을 준비하기 위해 빛을 낮추는 시간에 들어선 사람이었다. 오후 네 시의 침입자가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로 ‘베르나르댕’ 씨다.

어떤 이에게 오후 네 시란 한 낮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평온하고 따뜻한 저녁으로 가기 위해 이제 막 나른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이웃을 만나게 된 주인공 에밀에게 오후 네 시는 누구보다 치열한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의사 출신 이웃 하나쯤은 좋은 이웃일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베르나댕 씨는 언제나 오후 네 시에 찾아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며 불편한 시간을 내어주는 훼방꾼이자 침입자이다. 이야기는 이 오후 네 시의 고문자를 쫓아내고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의 모습을 그린다.

여기에서 이 소설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본다.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라는 구절이 이 소설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누구나 꽁꽁 감추고 있어서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절대 들키지 않았다가, 의도치 않게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 버리고 마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극대화해 풀어간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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