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쉬운 우리말 쓰기 : 외국인도 알아듣는 쉬운 우리말 ⑦ 복지 분야Ⅱ

말과 글은 누군가가 알아듣기 쉽게 써야 한다.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공공언어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쉽게’ 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이 물음에 ‘외국인이 알아들을 정도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라는 대답으로 이 보도를 기획한다. 공공 기관에서 나온 각종 안내문을 외국인들에게 보여 주며, 쉬운 우리말 찾기에 나선다.  -편집자-

[뉴스사천=심다온 기자]‘언어는 인권이다’. 이 문장은 2017년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의 이건범 대표가 쓴 책의 제목이다. 이 책에서 그는 그저 ‘우리말이니까, 우리 것이니까’라는 당위성을 넘어 국민의 권리와 인권 보장의 차원에서 우리말을 진단한다. 그 과정에서 표준어나 맞춤법, 고운 말 사용에 집중하기보다, 공공언어가 만들어 내는 ‘장벽’들이 생명, 존엄, 권리, 효율, 평등 등의 가치를 막고 있다는 데에 무게를 둔다. 이번 보도에서는 복지 분야의 두 개의 공공안내문을 살펴보고 어떤 ‘장벽’들이 국민을 막아서고 있는지 짚는다.

첫 번째로 2020년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이란?>제목의 안내문을 들여다보자. 첫눈에 내용을 이해했다가도 문득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 있다. 지원대상을 안내하는 대목에서 ‘만 30세 미만 미혼자녀’라는 표현이다. 한눈에는 ‘결혼을 안 한 자녀’란 생각이 들지만 곱씹어 보면,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자녀만 말하는 것인지 결혼 후 이혼, 사별 등으로 다시 결혼하지 않은 상태가 된 자녀도 포함하는지 모호하다. 이런 경우는 그 범위를 구분해 주면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지나치게 압축적으로 짧게 실으려다 잘못된 정보를 주는 표현도 있다. 이 또한 지원대상 조건에 제시된 내용이다. ‘'19년 평균소득, '19년 7~9월, 월 또는 평균소득, '20년 1~6월 평균소득 등 기간 중 택일’이란 표현에서 얼핏 보면 세 가지 중 택일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네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9년 7~9월, 월 또는 평균소득’은 '19년 7~9월 가운데 어느 한 달의 소득 또는 '19년 7~9월 평균 소득을 뜻하는 말인데, 간단히 쉼표만 찍어 두니 오히려 이해하기에는 복잡하게 됐다. 이를 조사를 넣어 ‘'19년 7~9월의 평균 소득’으로 쓰면 훨씬 쉽다. 이처럼, 생계지원사업의 대상에 포함되는지 아닌지는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모호함을 주는 짧은 단어보다는 길어도 명확한 표현이 더 낫다.

경남의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누리집에 알린 <2021년 반려동물 등록비용 지원 사업 추진계획>에서도 과도하게 줄인 말들이 국민의 알 권리 앞에 담을 쌓는다. 사업비를 소개한 부분에 ‘자담’이라는 줄임 표현이 있는데, 풀어 쓰면 ‘자기 부담, 개인 부담’이 된다. ‘자담’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나와 있어도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단어다. 게다가, 굳이 짧게 줄이는 것은 공문서를 작성하는 사람의 손품을 덜어줄 뿐, 이 내용이 꼭 필요한 독자에게는 혹독하게 다가갈 수 있다. ‘등록 수수료 1, 재료비 2, 시술비 1’이란 대목에서도 각각 1만 원, 2만 원, 1만 원을 의미하는데, ‘만 원’이라는 표현을 생략하니 숫자 1의 의미를 찾아 헤매게 된다. ‘가구당 2마리 이내의 지원금/보조금 지급’이라고 고쳐 쓰면 훨씬 친절한 이정표가 되고, 지원금 신청이 쉬울 것이다.

공문서를 작성하는 공공 기관의 입장만 드러내면서 잘못 쓰인 말도 있다. 반려동물을 등록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부분에서 쓰인 ‘진행요령’은 적절하지 못하다. 국민이 반려동물 등록비를 지원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를 알려주고 있으므로 ‘신청 방법’이라고 쓰는 것이 맞다. ‘진행’은 공문서를 작성한 공공 기관이 일을 진행한다는 의미로 쓰는 용어이기 때문에, 안내를 받는 사람이 보기에 다소 생뚱맞은 표현이다.

복지 분야의 공공안내문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이란?'과 '2021년 반려동물 등록비용 지원 사업 추진계획'.
복지 분야의 공공안내문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이란?'과 '2021년 반려동물 등록비용 지원 사업 추진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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