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덕분에』/ 재료: 밤나무
제목:『덕분에』/ 재료: 밤나무

[뉴스사천=월주 윤향숙] 나의 작업실은 낮에도 밤처럼 고요하다. 온통 감나무로 둘러싸인 작업실은 실내와 실외 구분이 없을 정도로 나무가 즐비한데, 오늘은 공방 한쪽에서 새소리가 계속 나는 게 아닌가.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참새 한 마리가 공방 창틀에 앉았다.

어제 해 질 녘, 감나무밭에서 나무 손질하느라 잠시 뒷문을 열어두었는데, 그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하루를 꼬박 공방에 갇혀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온갖 날갯짓을 했을 참새다. 골목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을 밤새 쪼았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퍼뜩 문을 열어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급한 마음과 달리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금장치를 걸어 놓았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안쓰럽고 바쁜 마음에 잠금장치 푸는 걸 깜빡했다. 고리를 풀고선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그런데도 참새는 바깥 공기가 잘 통하는, 열린 창을 쉽게 찾지 못했다. 작은 몸짓으로 날다가 닫힌 창문에 부리를 부딪치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러다 돌아와서 액자에 앉곤 했다.

나도 한때 뜻하지 않게 낯선 길에 들어설 때가 있었다. 그때는 ‘무엇, 무엇’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일을 겪다 보니 남 탓보다 내 탓이 더 컸음을 깨달았다. 일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견해가 달라졌다. 

분명한 것은 세월의 흔적처럼 나도 변했음이다. 만약 지금보다 조금 더 젊은 시절에 남을 기준으로 생각했더라면, 이해의 폭은 훨씬 더 넓었을 것이다.

바깥에 비 오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움직이는 폭이 짧아지더니, 새가 열린 창문으로 큰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다. 한 마리의 새 덕분에 깨달음이 많은 오늘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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