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남강댐 사천만 방류에 정부 책임을 묻다 ④

공공사업 중 일어난 피해에 책임지는 자세는 ‘마땅’
경주 방폐장도, 포항 지진도 ‘국가에 책임을 묻고 있다’
‘특별법이든 시행령이든…사천시 지원책을 마련하라’
남강댐 상생협력 민관협의체에 거는 기대와 걱정


국가의 정책으로 졸지에 남강 물벼락을 맞게 된 사천시. 50년 넘는 설움은 오늘도 끝날 줄 모른다. 오히려 더 큰 물벼락의 위험이 눈앞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국가가 한 자치단체에 이렇듯 일방적 부담을 떠안기는 게 온당한가. 앞선 공공사업의 사례에서, 남강댐 인공 방류의 피해 지역인 사천시에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짚는다. -편집자-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기상이변은 잦아지며, 가뭄과 홍수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2022년 지구촌의 여름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그중에 한반도는? 단연코 기록적인 폭우가 눈에 띈다.

8월 8일엔 서울 도심과 경기도, 며칠 뒤인 14일엔 충청도 일대를 강타한 집중호우로 생명과 재산 피해가 무척 컸다. 시간당 강수량이 50~100mm에 이르렀는가 하면, 1일 강수량이 500mm를 넘는 곳도 적지 않았다. 태풍의 영향이라면 모를까, ‘2차 장마’·‘늦여름 장마’라는 낯선 표현에서 짐작하듯이 한반도에서 마주하는 흔한 여름철 표정은 아니었다.

남강댐과 사천의 악연은 인공 방류구와 방수로가 사천만으로 향하면서 출발했다. 이제는 국가가 그 악연을 끊을 때다. 2020년 여름 남강댐 방류수가 가화천을 통해 사천만으로 향하는 모습.
남강댐과 사천의 악연은 인공 방류구와 방수로가 사천만으로 향하면서 출발했다. 이제는 국가가 그 악연을 끊을 때다. 2020년 여름 남강댐 방류수가 가화천을 통해 사천만으로 향하는 모습.

이런 기상이변이 더 센 강도로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 여름철마다 남강댐 인공 방류수를 뒤집어쓰는 사천시민들로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사천시는 얼마나 더 많은 남강물을 받아낼 수 있을까. 나아가 얼마의 세월을 ‘사천시’라는 지자체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남강댐의 사천만 인공 방류 문제’는 지역민들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뉴스사천>은 앞선 보도에서, 국가든 지자체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 어쩔 수 없이 희생을 치르는 곳이 있다면 그 희생 지역과 지역민들에게 상응하는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마땅함을 살폈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받아들인 경주시 사례에선 국가가, 인제종합장묘센터를 유치한 강원도의 작은 산골 마을(=남전1리) 사례에선 인제군이 피해 지역을 배려했다.

2017년 포항 지진의 원인이 무리한 지열발전 시도에 있었음이 확인되자 정부가 피해 보상에 나섰다. 지열발전소 자리에는 지진 안전관리 연구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2017년 포항 지진의 원인이 무리한 지열발전 시도에 있었음이 확인되자 정부가 피해 보상에 나섰다. 지열발전소 자리에는 지진 안전관리 연구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포항 지진 사례는 국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이 부실해 일어난 재난에 국가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2017년에 일어난 포항 지진에 지열 발전 사업이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한 정부는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 구제와 지원에 나섰다.

세 사례에서 혐오시설을 유치하거나 지진으로 해를 입은 지역민들로서는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책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남강댐 방류로 시름이 깊은 사천의 지역민들에겐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남강댐의 사천만 인공 방류 문제도 이렇게 접근해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돋는다.

1970년 무렵 남강댐과 사천만 인공 방수로의 탄생으로 시작된 남강댐과 사천의 악연. 그 악연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내는 이유가 기상이변이다. 기상이변으로 더 센 폭우가 내릴 수 있고, 그에 대비해 사천만으로 더 큰 방류구와 방수로를 뚫겠다는 계획을 정부가 내놨다. 이참에 50년 묵은 악연을 어찌 정리할지 사천시와 시의회, 정치권,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물론 맞은편엔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있다.

남강댐 물 사천만 방류 문제해결 토론회 (사진:뉴스사천DB)
남강댐 물 사천만 방류 문제해결 토론회 (사진:뉴스사천DB)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해 말 하영제 국회의원실 주최, <뉴스사천> 주관으로 개최한 ‘남강댐 물 사천만 방류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 이후 구체화하고 있다. 1차 결실이 남강댐 상생협력 민관협의체 발족으로 나타났다. 4월 5일에 발족한 이 민관협의체에는 환경부, 경상남도, 사천시,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 문제 대응 범시민대책위, 어민 대표 등이 참여한다.

이 민관협의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과거의 행태로 볼 때, 사천시와 지역민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시간만 끌 뿐”이라고 비판하는 게 한 축이다. 다른 축은 “상생이란 이름으로 머리를 맞대고 앉았음”에 의미를 두면서 “묵은 숙제를 풀 절호의 기회”라 여기는 인식이다. 이를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보다, 작은 변화 가능성이라도 좇아 실효성 있는 결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사천시와 사천시민을 대표해 협의체에 참여한 이들의 마음가짐이다.

토론회를 주최한 하영제 의원이 댐 하류 피해 관련 특별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토론회를 주최한 하영제 의원이 댐 하류 피해 관련 특별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실효성 있는 결과’를 두고 하영제 국회의원(사천남해하동, 국민의힘)은 특별법 제정을 중요하게 꼽았다. 그는 “기존의 법을 조금씩 고치는 쪽으로 접근해서는 50년 묵은 이 문제를 풀기 어렵다”며 “공청회라도 열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면 새 판을 짜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새 판’은 ‘특별법 제정’을 뜻한다.

박창근 교수가 남강댐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창근 교수가 남강댐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하영제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았던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대한하천학회 회장)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특별법 제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법 제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도 많이 들어서 자칫 때를 놓칠 수 있다”며, “낙동강수계법, 하천법 등 기존의 법에 조항을 추가하거나 시행령을 고치는 정도로도 가능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 의원은 근본적 처방에, 박 교수는 신속한 처방에 무게를 뒀을 뿐, 남강댐 방류에 따른 사천의 피해를 인정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선 맥락이 같다.

이 같은 인식에는 환경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김구범 환경부 수자원정책과장은 관련 질문에 “(인공방수로를 통한) 댐의 방류로 하류 지역인 사천지역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에 매우 안타깝고, 정부에서도 사천시민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어 “남강댐의 특수성를 감안하여 지역 상생 차원의 다양한 지원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제도 개선 의지를 밝혔다.

남강댐 방류 피해에 따른 지원책을 법률과 시행령으로 만든다고는 하나, 각론에 들어가면 어려운 과제가 여전하다. 남강댐으로 인한 피해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이고, 어느 정도에서 피해를 보상해 줄 것인가가 핵심이다.

남강댐 범시민대책위에선 “사천만방수로를 자연적인 하천이 아니라 남강댐에 속한 시설물로 봐야 한다”며, 극한 홍수에 따른 남강댐 방류 시 이를 단순히 자연재해로 볼 게 아니라는 견해다. 인공 방류가 아니었다면 사천시나 사천지역이 떠안을 홍수가 아니란 뜻에서다. 이런 견해에 환경부나 수자원공사는 말을 아끼고 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불어닥친 뒤 법적 다툼까지 번졌던 어업 피해 보상 문제도 부담이다. 환경부는 소송에서 어민들이 패소했음을 들어 “과거의 어업 피해를 보상할 방법은 없다”고 선을 긋는 분위기지만, 어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 문제를 풀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남강댐 상생협력 민관협의체가 발족해 활동에 들어갔다. 피해 현황을 조사하고 지원책을 찾는 일에 사천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남강댐 상생협력 민관협의체가 발족해 활동에 들어갔다. 피해 현황을 조사하고 지원책을 찾는 일에 사천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해 남강댐 상생협력 민관협의체의 민간위원을 대표하는 김학록 위원장은 “민간위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고, 정부 쪽과도 간극이 크다”며 “앞으로 협의체에서 논의하는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려서 폭넓게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민관협의체 활동의 진퇴를 가늠할 시간이 다가온다. 오는 8월 30일로 예정된 3차 회의다. 이날 다룰 안건은 남강댐의 방류가 사천만에 일으키는 각종 피해를 조사하기 위한 연구 용역의 과업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방류량별 침수 범위와 어업 피해 정도, 그리고 대책을 찾는 중요한 시발점이나 마찬가지다. 사천시민들이 더욱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다.

남강댐에 얽힌 50년 악연을 끊고 한을 푸는 일은 이제 시작이다. 어쩌면 그것은 사천시와 시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문제의 해법을 내놓으라고 정부를 향해 당당히 주장할 명분도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행동만 남았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