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남강댐 사천만 방류에 정부 책임을 묻다 ③

정부 지원사업인 ‘지열발전소’가 지진 원인으로 지목돼
‘특별법 만들어 정부와 지자체가 피해 주민 지원에 나서다’
지원금만 10만여 건에 4850억 원…사천시민 지원 방안은?
‘지진…감독 부실이 원인’ 대 ‘수해…댐 만들 때부터 잉태’

 

국가의 정책으로 졸지에 남강 물벼락을 맞게 된 사천시. 50년 넘는 설움은 오늘도 끝날 줄 모른다. 오히려 더 큰 물벼락의 위험이 눈앞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국가가 한 자치단체에 이렇듯 일방적 부담을 떠안기는 게 온당한가. 앞선 공공사업의 사례에서, 남강댐 인공 방류의 피해 지역인 사천시에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짚는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31초. 경북 포항시 흥해읍은 짧은 순간에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지진 때문이었다. 땅이 흔들리고 건물에 금이 갔으며, 일부 건물은 외벽이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리히터(=릭터) 규모로는 5.4,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으로는 6에 해당하는, 한반도에선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강진이었다.

지진이 발생하자 피해 수습과 함께 주목받은 건 지진의 원인이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진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에서다. 2019년 3월 20일, 정부 조사단이 ‘포항지열발전소의 지하공 물 주입이 포항 지진을 일으켰다’고 발표하면서 지진 피해에 따른 구제의 책임에서 정부가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그해 말, 국회는 「포항 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 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줄여 포항지진피해구제법)을 제정해 정부가 지진 피해 구제를 돕도록 뒷받침했다.

이 특별법에 따라 포항에서는 지진 피해 보상 작업이 한창이다. 비록 주민들 사이에는 “실제 피해액보다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상당하지만, 국가의 정책 탓에 남강댐 물벼락을 맞고 사는 사천시민들에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7년의 포항 지진을 이해하기 위해선 포항지열발전소와 관련 사업을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포항 지진의 원인으로 꼽힌 지열발전소 현장. 정부는 관리·감독에 책임이 있다 하여 특별법으로 지진 피해 구제에 나섰다.
포항 지진의 원인으로 꼽힌 지열발전소 현장. 정부는 관리·감독에 책임이 있다 하여 특별법으로 지진 피해 구제에 나섰다.

포항지열발전소는 2010년 ‘MW(메가와트)급 지열 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이라는 이름의 정부 지원 연구개발 사업에서 비롯했다. 사업수행기관은 ㈜넥스지오 컨소시엄이었고, 정부 출연 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사업에 참여했다. 2012년 9월에 시추공사를 시작해 2016년 6월에 1차 설비 공사를 끝냈다.

지열 발전은 깊은 지하에 물을 넣은 뒤 뜨거워진 물을 끌어 올려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작업이다. 포항지열발전소는 여러 차례 시험 발전을 거친 뒤 2017년 말까지 4,000여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6.2MW 규모의 상업 발전을 개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7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발전소는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엔 ‘포항 지진 안전관리 연구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포항지진피해구제법이 만들어지고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이 위원회는 1년 3개월간의 독립적 조사 활동 끝에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발표문에서 사업수행기관인 넥스지오의 ‘유발지진 감시와 관리 부실’을 지적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와 포항시의 부적절한 관리·감독을 지적하면서 미흡했던 법령과 제도를 개선할 것도 주문했다.

위원회는 이 발표에서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사업 중 발생한 촉발지진’이라는 정부조사연구단의 과학적 규명 결과를 토대로 조사했다”고 밝힘으로써, 포항 지진에 지열 발전 사업이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포항지진피해구제법의 핵심은 그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지진 피해 구제와 지원에 있다. 이 업무의 수행을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포항 지진 피해 구제 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했는가 하면,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위한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법에 따라 구성된 지진피해구제심의위는 2020년 9월 21일부터 이듬해 8월 31일까지 피해 구제 신청을 받았다. 포항시는 지진특별지원단을 구성하고 주민들의 피해 구제 신청을 도왔다.
피해 구제 신청이 들어오면 6개월 안에 손해사정 전문업체가 사실 조사를 한 뒤 심의위의 의결을 거쳐 피해자 인정과 지원금 지급이 결정됐다. 유형별 한도액 안에서 피해를 100% 지원한다는 게 원칙이었다. 이때 지원금은 국비보조금 80%, 지방비 20%로 충당했다. 자치단체에도 피해 구제의 책임을 일부 졌음을 뜻한다.

포항 지진 피해의 다양한 흔적들.
포항 지진 피해의 다양한 흔적들.
포항 지진 피해의 다양한 흔적들.
포항 지진 피해의 다양한 흔적들.

사람이 다치거나 집이 파손된 경우 외에도 축사나 양식장 피해, 소상공인의 영업 피해도 지원의 대상이었다. 다만 공공시설은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재산피해에 따른 지원금 한도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주택을 수리할 수 없는 경우 1억 2천만 원 △주택을 수리할 수 있는 경우 6천만 원 △주택의 부속물 및 가재도구 등에만 피해가 있는 경우 2백만 원 △주택의 세입자 6백만 원 △공동주택의 공용부분 피해 5억 원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자의 사업장 피해 1억 원 △농업·축산업·어업의 피해 3천만 원 △종교시설, 사실보육시설 등 비영리목적으로 설립된 시설의 피해 1억 2천만 원 등이다. 인명피해에 따른 지원금 결정 기준도 있으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피해 구제 신청은 12만 건이 넘었다. 이 가운데 올해 7월 말 현재, 지진 피해 구제 지원금이 지급된 사례는 10만 6462건이다. 금액으로는 4,850여억 원이다. 이 밖의 일부 사례를 두고선 이의신청과 재심이 이뤄지고 있다. 판단에 따라 추가 지원이 이뤄지거나 환수 조처가 내려질 수 있다.

지난 6월 말에 찾은 포항시 흥해읍은 평온을 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지진 피해의 흔적이 아직 곳곳에 남아 5년 전의 악몽을 완전히 털어내진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벽에 금이 간 가운데, 행여 낙하물이라도 떨어질까 안전 구조물을 덧댄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주택 주민들이 있었다. 지진 후유증을 측정하기 위한 장치가 건물 벽에 덕지덕지 붙은 모습도 곳곳에서 발견했다.

지진으로 가장 피해가 컸던 대성아파트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특별재생사업이란 이름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포항시는 이곳에 ‘행복도시 어울림 플랫폼’이란 이름으로 공공도서관과 아이누리플라자, 북구보건소, 트라우마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마중물 사업과 부처연계 사업 등으로 2,896억 원이 투입된다.

다만 지진 피해 주민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주는 지진 피해 구제 지원금이 실제 피해액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반발하고 있었다. 흥해읍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우리 집만 해도 2,800만 원의 피해 견적이 나왔는데, 330만 원밖에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며 “다른 피해 주민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포항시의회는 7월 29일 채택한 성명서에서 산업통상자원부를 향해 “국책사업에 대한 관리부실로 대형 재난이 일어난 것에 공식 사과하라”고 다시 한번 촉구했다. 또 일부 지역민들이 그날의 충격과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정부는 촉발지진 피해 지역의 무너진 경제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 지진의 피해 극복 사례에서 남강댐 인공 방류 피해의 해법을 찾는 것은 억지일까. 얼핏 달라 보이기도 하지만 공통점도 여럿이다. 오히려 포항 지진이 산업부의 관리 부실에 책임을 묻는 정도라면, 남강댐 인공 방류는 하류 지역민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선택한 사업이자 정책이다. 이 사업으로 사천시와 사천시민들이 받을 부담과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50여 년 전 군부독재 시절에 주민들의 뜻과 무관하게 사업이 강행됐다.

남강과 낙동강 하류 지역의 홍수를 예방한다며 낙남정맥의 허리를 잘라 사천만 바다로 곧장 남강물을 흘려보내는 일. 그로 인한 피해를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수해와 똑같이 바라보고 있음이 부당하다고 사천시민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라도 사천이 남강댐 인공 방류에 따른 피해 지역임을 인정하고 적절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게 정부를 향한 시민들의 요구다.     

지진으로 사라진 대성아파트 자리에는 특별재생사업이 한창이다.
지진으로 사라진 대성아파트 자리에는 특별재생사업이 한창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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