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굶주려 있습니다. 욕심의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인간에게 애초 만족이란 표현은 가당찮은 의상에 불과합니다. 만족이 부재하기에 행복한 결말은 기대할 수 없으며, 인간의 탐욕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있는 것, 가진 것만으로는 불만족스러워 더 나은, 더 새로운 것을 좇아 인간은 온갖 죄악을 일삼습니다. 자연과 또 다른 생명체들은 그러한 인간의 잔혹한 횡포에 존재 가치를 강탈당하고 제 모습을 상실해 갑니다.
 
최근 기후의 동향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려와 경계의 수위를 넘어 거대한 공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이 아니라며 오판하고는 어물쩍 넘기고 외면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닥칠 지도 모를 불행한 사태에 대한 대비는커녕 기후 위기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하니 안타까운 근심만 무게를 더합니다.
 
자존감이란 나만 잘 되고 나만 대우 받고 나만 행복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이를 수용하여 바로잡는 행위에서 자존감은 생성합니다. 법정 스님은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기보다는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다.”라고 설파했습니다. ‘흐트러지려는 나’란 어떤 의미일까요. 앞서 언급한 인간이 저지르는 자연을 거스르는 부도덕한 행위 일체를 말함일 것입니다. 1990년 ‘자존감과 개인적·사회적 책임의 증진을 위한 캘리포니아 특별위원회’는 각종 범죄와 폭력과 중독 등의 예방을 위한 사회적 백신으로 자존감을 제시했는데 이는 매우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주장입니다.
 
현재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작업입니다. 자신을 돌보고 돌이킬 여유와 상념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남보다 내가 더 우위를 점하고, 더 훌륭해야 하는 악몽의 허방다리에서 자신을 끄집어내어야 합니다. 편협한 사유가 낳은 환몽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은 한 사람의 존재는 만일 그가 진정한 인간이라면 온 세상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누린 것들과의 작별은 슬픔을 낳습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고 그 온전함을 기원한다면 더 이상의 욕심을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쓴 「손」이라는 시입니다. “우리의 손가락 다섯 개, 그 각각의 끝에 있는 / 스물일곱 개의 뼈, / 서른다섯 개의 근육, / 약 2천 개의 신경세포들. 『나의 투쟁』이나 / 『곰돌이 푸의 오두막』을 집필하기엔 / 이것만으로 충분하고 넘친다.” 손의 역할은 더하여 꾸밀 것도 없으며 넘쳐서 빼낼 것도 없다는 간단명료한 선언입니다. 흐트러진 인간을 거두기 위해 대입해도 좋은 장치라고 여깁니다. 

그는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행위는 ‘지우는 것’이고, 가장 필요한 가구는 ‘쓰레기통’이다.”라고 단정했습니다. 흐트러진 삶을 걷는 인간들,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고민의 저울에 올려 새로이 쓸모 있는 해법을 얻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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