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달의 인물 : 청년 농부 김정우 씨

사천 벼농사계의 큰손 김정우 씨. 청년 농사꾼인 그는 청년들의 귀농을 반기면서도 철저한 준비를 당부한다.
사천 벼농사계의 큰손 김정우 씨. 청년 농사꾼인 그는 청년들의 귀농을 반기면서도 철저한 준비를 당부한다.

[뉴스사천] 직업에 귀천이 없듯 농사에도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게 따로 없다. 다만 가장 보편적인 농사를 꼽으라면 단연코 벼농사다. 종사자 수로만 따져도 농업 분야에선 탁월한 으뜸이다. 사천에서 이 ‘벼농사’하면 손에 꼽는 이가 있다. 서포면 구평리 통정마을의 김정우(38) 씨다. 농사 규모도 놀랍지만, 모내기와 수확을 남보다 늘 먼저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9월, 농협중앙회로부터 ‘이달의 새농민상’까지 받은 ‘청년 농부’를 만난다.

벼농사계의 큰손
서포면 다평리에 있는 서포복합영농조합법인의 농장을 찾은 건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이 법인은 김 씨와 그의 아버지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것으로, 벼농사를 주업으로 한다.
언덕 위 진입로 쪽에서 농장을 내려다보면 저 멀리 다평 들이 한눈에 든다. 여기서 시선을 조금 당기면 태양광 패널이 즐비하다. 축사 지붕을 태양광 발전 시설로 이용함을 짐작할 수 있다. 축사 옆 너른 마당은 초록 물결로 가득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린 모가 자라고 있다. 논에 있어야 할 못자리가 어찌 시멘트로 덮인 마당으로 올라왔을까.

“농사 규모가 큰데다 최대한 가까이서 노동력을 아껴 일하려다 보니 이런 아이디어가 나온 거죠. 물 대기도 좋고, 모를 찌기도 쉽거든요. 남들이 보면 우리가 일부러 조생종 벼 종자를 선택해 심는 줄 아는데, 그건 아니고요. 모를 잇달아 두 번 키워 내려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죠. 여긴 갯논이어서 수확이 늦으면 소금기가 올라와 해를 입기도 해요.”

축사 옆 너른 마당은 초록 물결로 가득하다.
축사 옆 너른 마당은 초록 물결로 가득하다.

‘아하, 그렇구나!’ 집 마당이 못자리로 변한 이유에, 김 씨가 모내기와 벼 수확을 남들보다 늘 먼저 하는 까닭을 헤아리겠다. 그 출발이 농사 규모에 있었다. 그가 짓는 벼농사 규모는 1,000마지기. 대략 66만㎡에 이른다. 여기에 자신의 농사가 아닌, 마을 주민들의 부탁으로 대신 짓는 농사가 또 상당하단다. 물론 아버지와 법인 식구들이 함께한다지만, 입이 쩍 벌어질 만큼 큰 규모임이 분명하다.
규모에 걸맞게 웬만한 농기계도 다 갖췄다.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대형 방제기, 포클레인, 지게차 등으로, 종류별로 2~3대씩은 기본이다. 여기에 벼를 말리는 건조기, 방아를 찧는 도정기까지 갖춘 채, 주로 쌀을 가공해 직접 출하한다. 수확량의 60~70%를 계약재배 방식으로 쌀 판매업체에 넘기고, 정부 수매량은 전체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법인의 자체 상표인 ‘숙당미’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이렇듯 농사 규모가 크니 365일 빼꼼한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게 김정우 씨의 탄식이다. 아무리 그래도 벼농사인데, 농번기와 농한기의 구분은 있지 않을까?

“농한기요? 그런 거 거의 없어요~(웃음)! 보통 3월 초부터 바빠지기 시작하는데, 4월이면 못자리를 해요. 5월 초순에 1차 모심기를 하면, 중순에는 2차 못자리를 만들고, 6월이 되면 다시 2차 모심기를 하죠. 7월부터는 방제 작업에 들어가는데, 보통 보름 정도에 1번씩 3회에 걸쳐서 한다고 보면 됩니다. 태풍이 오면 추가 방제를 할 때도 있죠. 8월 중순부터는 1차 벼 수확에 들어가면서 2차 벼는 계속 방제해야 하고. 10월에는 2차 벼 수확하면서 건조, 도정 작업도 해야 해요. 이게 1월까지 가거든요. 2월엔 소 사료로 쓸 볏짚 수거 작업도 해야 해서, 쉴 틈이 없죠.”

'청년 농뷰' 김정우. 김혜리 씨 부부.
'청년 농뷰' 김정우. 김혜리 씨 부부.

부부가 함께 농사지어요
짧은 설명에 설명을 듣는 사람으로서도 1년이 금세 지나간 느낌이다. 이렇듯 바쁜 와중에 몇 년 전부터는 한우를 기르기 시작했단다. 몇 마리 되지 않던 게 어느새 190마리로 불었으니, ‘점점 큰 일손을 잡아먹는다’는 하소연은 당연한 결과다.

“오늘이 어린이날이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어린이날 몰라요. 모심는 시기라 늘 바쁠 때니까. 오늘도 저만 애들과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네요. 그나마 지금은 애들이 커서 다행이죠.”

곁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김 씨의 아내 김혜리(37) 씨가 말을 거든다. 김 씨의 아내 역시 청년 농부다. 한때는 더 많이 농사에 힘을 보탰으나, 지금은 14살 재용, 12살 재형, 두 아들을 키우느라 조금 소홀해졌단다. 그래도 지난해 남편과 함께 ‘이달의 새농민상’(9월)을 받은 어엿한 수상자다.
두 사람은 경상국립대 동물생명과학과에서 같이 공부한, ‘과 커플’ 사이라고 했다. 동물생명과학과? 그렇다면 김 씨는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일찌감치 농사꾼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인가? 이번에도 그는 크게 손사래를 친다.

“사실 농사엔 전혀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할 무렵에 ‘같이 농사를 시작해보지 않겠냐’고 그러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그땐 아버지도 전업농이 아니셨거든요. 저는 ‘직장생활은 내 적성에 안 맞겠다’, 이런 생각을 하던 때라, 그냥 그러겠다고 했죠. 진짜 하고 싶었던 건 옷가게나 카페를 차리는 거였는데, 농사지으며 내 일을 준비할 수 있을 줄 알았죠. 하하하, 영영 기회가 없더군요!”

김정우 씨와 그의 든든한 농사동지들. 왼쪽부터 박정식, 김정우, 김혜리, 김호성, 백윤두리(母), 김종수(父), 김동민 씨.
김정우 씨와 그의 든든한 농사동지들. 왼쪽부터 박정식, 김정우, 김혜리, 김호성, 백윤두리(母), 김종수(父), 김동민 씨.

든든한 동지들
김정우 씨의 아버지는 김종수(68) 님, 어머니는 백윤두리(63) 님이다. 김 씨보다 먼저, 더 크게 서포복합영농조합법인의 발판을 닦은 분들이다. “부모님의 부지런함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요!”라며 짓는 김 씨의 옅은 웃음에서 부모를 향한 강한 존경심이 묻어난다.
그는 “요즘 특별히 힘이 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함께 일하는 동지(?)들을 소개했다. 다평마을 이장 박정식(51) 씨를 비롯해, 사천수협 감사를 맡고 있는 김호성(50) 씨, 전기업을 병행하는 김동민(49) 씨 등이 주인공이다.

“옛날엔 아버지와 저만 일하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요즘엔 형들이 있어 훨씬 낫죠. 손 맞잡이가 있어 힘이 덜 들기도 하고, 덜 외롭다고나 할까요? ‘형’이라지만 다 열 살 이상 차이 나는데, 그게 어딥니까? 시골에선 다 같은 청년들이죠! 그리고 한 팀이고!”

김 씨와 그 형들의 팀워크가 제법 끈끈한 모양이다. 그러나 김 씨는 또 다른 ‘청년 농부’의 도전에는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농촌의 현실인 듯 씁쓸하다.

“청년들이 농촌에 많이 들어오면 반가운 일이죠. 하지만 정착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니까요. 어느 규모 이상의 농지와 농기계가 준비되지 않으면, 저는 무조건 말리겠어요. 형들처럼 겸업하면 또 모르죠.”

서포복합영농조합법인의 쌀 상표는 '별주부전의 숙당미'이다.
서포복합영농조합법인의 쌀 상표는 '별주부전의 숙당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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