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달의 인물 : 한겨레 부산교통 시외버스 기사

앞으로도 음주운전만큼은 지역사회에서 사라지도록 더 노력하겠노라 마음먹고 있다는 사천시민 한겨레 씨.
앞으로도 음주운전만큼은 지역사회에서 사라지도록 더 노력하겠노라 마음먹고 있다는 사천시민 한겨레 씨.

[뉴스사천] 음주운전. 자신은 물론,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누군가의 인생까지 망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그 심각성에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그릇된 선택을 하는 이가 해마다 적지 않다. 그런데 여기, 음주 운전자를 벌벌 떨게 하는 이가 있다. 그는 지난 1년 사이에 음주운전 차량을 두 번이나 뒤쫓아 경찰에 넘겼다. 그 주인공을 만나본다.

 

#장면1

“경찰이죠? 아무래도 제 앞에 가는 차가 위험해 보입니다. 음주 차량인 것 같아요. 계속 따라가고 있는데, 와 주셔야겠어요.”

“그래요?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삼천포에서 신도로(국도 3호선) 타고 사천읍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용현쯤 지나고 있습니다.”

올해 3월 26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 대화가 있은 지 20분쯤 지났을까. 시간이 밤 11시를 넘길 무렵, 항공우주테마공원 근처 도로에서 뒤따르던 차량이 앞차를 추월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다행히 서로 부딪치진 않았다. 충돌은 피했지만, 뒤에 선 차량의 운전자는 꽤 놀랐거나 화가 났을 터였다. 그래서일까. 뒤차 운전자가 내려 앞차로 다가갔다. 그러자 길을 막았던 앞차는 조금씩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슬슬 꽁무니를 빼는 것으로 보였다. 때마침 경찰이 도착했다. 뒤차 운전자는 음주운전 테스트에서 0.099%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나와 경찰에 붙잡혔다.

 

한겨레 씨는 부산교통 시외버스 기사로 삼천포-부산 구간의 우등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한겨레 씨는 부산교통 시외버스 기사로 삼천포-부산 구간의 우등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용감한 시민의 이름은? 한겨레!

이 장면에서 음주운전 의심 차량을 경찰에 신고하고 직접 뒤쫓은 이는 사천시민 한겨레(33·남양동) 씨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님은 분명하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어릴 적에 동네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부딪힌 적이 있어요. 동네 형과 심부름 가던 중이었죠. 그나마 저는 덜 다쳤는데, 형은 큰 수술을 할 만큼 많이 다쳤어요. 그때부터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살면서 음주운전 의심 차량을 계속 신고했던 건 아닌데, 아무래도 요즘 대중교통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안전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위험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진 것 같아요.”

한 씨는 삼천포에서 부산을 오가는 시외버스(부산교통 소속)의 운전기사다. 지난해 7월에 이 일을 시작했으니 경력이 그리 길진 않다. 그래도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길 줄 아는, 투철한 직업정신의 소유자임을 자부한다.

 

그는 남양동에서 나고 자란 이곳 토박이다. 그러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기억이 썩 좋지는 않다. 아버지가 전기·통신 관련 일을 했지만, 살림이 넉넉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 뒤엔 고교 진학을 포기한 채 아버지 일을 돕기도 했다. 뒤늦게 방송통신고에 들어가 학업을 마칠 무렵엔 이른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쫓기듯 군 복무를 택했다.

“그 시절엔 꿈이 별로 없었어요. 어머닌 눈물 흘릴 때가 많았고, 저는 아버지를 원망했죠. 고백하건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음주운전도 여러 번 했어요. 그래서 저는 다르게 살아보리라 마음먹기도 했고요. 오죽하면 ‘남들처럼 기본은 하고 살자’를 좌우명이자 꿈으로 삼았을까요?”

한겨레 씨는 “남들처럼 기본은 하고 살자’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한겨레 씨는 “남들처럼 기본은 하고 살자’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장면2

지난해 7월의 어느 자정을 넘긴 깊은 밤. 한겨레 씨는 거제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진주-통영 간 고속도로의 공룡휴게소를 얼마 앞뒀을 즈음에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빠르게 달리던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떨어뜨린 탓이다. 한 씨가 상향등을 켜며 경고를 보내자 앞차는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잠시 일어난 일이었는데도, 한 씨는 무언가를 직감했다.

“경찰이죠? 제 앞차가 좀 이상합니다.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하는 것 같아요. 속도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좌우로도 왔다 갔다 합니다.”

경찰은 곧 출동하겠노라 답했지만, 한 씨는 전화기를 켠 채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관할 지역이 통영에서 고성으로, 다시 진주로 바뀌면서, 경찰의 새 담당자와 계속 대화를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앞차는 진주시 하대동 어디쯤에서 멈췄다.

“아저씨, 음주운전 하신 거 아닙니까?”

차에서 내린 운전자에게 한 씨가 퉁명스럽게 묻자, 운전자는 급히 자신의 차에 다시 올랐다. 그러곤 차를 몰아 어딘가로 향하려다 주차된 옆 차량을 들이받고 멈췄다. 곧 경찰이 출동해 그를 붙잡았다.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5%로 만취 상태였다.

 

음주운전 없는 지역사회를 위하여

공교롭게도 이 일은 그가 시외버스 운전기사로 일을 시작하기 하루 전에 일어났다. 새 직장에 첫 출근을 앞두고, 음주운전 의심 차량을 뒤쫓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이때 자신의 행동이 조심스럽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아요. 급한 마음에 저도 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려는 사람을 막았죠. 옷을 붙잡기도 했던 것 같고요. 나중에 경찰관이 그러더라고요. 앞으론 절대 그러지 말라고. 위험할 수 있다고. 그냥 차 안에 머물면서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서툴렀던 이 경험 덕에 한 씨는 더 성장했던가 보다. 올해 3월에 있었던 두 번째 음주운전 차량의 추격 상황에선, 자신의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더 안전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겁이요? 당연히 났죠, 저도 사람인데. 보복당할 수도 있는 일이고. 하지만 누군가 제3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에 꼭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경찰에 들은 얘긴데, 항공우주테마공원에서 붙잡혔던 분이 조사받으면서 ‘저한테 고맙다’고 했다더라고요. 그 말 들으니 저도 마음인 한결 가벼워졌어요.”

한겨레 씨는 이번 일로 사천경찰서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한겨레 씨는 이번 일로 사천경찰서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한 씨는 이번 일로 사천경찰서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뿌듯했다. 나아가 앞으로도 음주운전만큼은 지역사회에서 사라지도록 더 노력하겠노라 마음먹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줄곧 시원시원한 모습을 보였던 한겨레 씨. 꿈을 묻는 말에도 유쾌하게 답했다.

“이제 결혼해서 오순도순 살아야죠. 그런데 삼천포 여자들이 다 눈이 삐었는지, 저 같은 보석을 아무도 몰라보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글은 사천시정 소식지 「사천N」 5월호의 <이달의 인물> 난에 실린 기사와 같습니다. (글 제공: 사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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