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저 / 정지인 역 곰출판 / 2021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저 / 정지인 역 곰출판 / 2021

[뉴스사천=이슬기 사천도서관 뫼잣마루 독서회 회원] “이 책은 꼭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세요.”

만약 내가 이 책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름 모를 현자가 한 말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책이 워싱턴 포스트 등에 의해 선정된 2020년 올해의 책이라는 점과 장르가 ‘비문학’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출판사 직원이어도 똑같이 썼을 것이다. 이 놀라운 책은 (일단은) 분류상으로는 과학서이지만, 이게 과학책인지 인문학인지도 처음에는 애매모호했다. 

이 책의 초반에는 일견 우울한 화자의 어린 시절과 화자와는 전혀 비슷한 데가 없어 보이는 어느 중년 남자에 대한 일대기가 펼쳐진다. 물론 문제의 중년 남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좀처럼 볼 수 없는 영웅적인 자질을 가지고 존경스러운 집착과 열정으로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은 일을 해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더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기를 바란다. 이제는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대해서는 꼭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끝까지 읽고,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12장까지는 읽으시길. 그것도 힘들다면 9장까지만이라도. 그 이전에는 포기하면 안 된다. 9장 이전의 책과 9장 이후의 책은 전혀 다른 책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다르고, 12장 이전의 책과 12장 이후까지 다 읽었을 때의 경험은 천지 차이로 다르다.

그리고 만약에 당신이 이 사회에서, 이 우주에서 혼자라는 생각이 사무치게 든 적이 있다면, 이 책이 분명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 책은 우리를 위로한다.

사회 앞에서, 무엇보다 자연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고 먼지보다 쓸모없는 존재인지 느껴봤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의 이 이상스러운 감동을 느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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