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김영조 시민기자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예나 제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옛날 서양에서 있었다는 연금술도 그런 것의 하나일 테고, 요즘 간간이 말썽이 나는 피라미드판매도 일확천금을 꿈꾸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조선시대 제20대 경종 임금 때에도 있었습니다.

거문고를 타면 검은 두루미가 와서 앉는다 하여 현학도사라 불린 이태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속리산 석굴에서 왔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이야 속리산하면 유명한 관광지로 웬만한 사람이면 한 번쯤은 다녀올 만한 곳이지만 당시는 한양에서 멀기도 했고, 호랑이가 나오던 심산유곡이어서 그곳에서 도를 닦았다 하면 누구나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법했지요. 그는 자신이 둔갑술에 능하고, 백 리 밖의 사실을 능히 알아내며, 귀신을 부려서 어떤 물건이든 가져올 수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은이 필요하다고 하자 “귀신을 부려서 은화를 얻으려면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가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붉은 도장 곧 관리의 도장이 찍힌 종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 현학도사를 따르던 사람 중 공조에 속한 선공감이란 기구에서 종8품 종사의 자리에 있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현학도사에게 자신의 붉은 도장을 찍은 종이 십여 장을 가져다주었지요.

그 종이를 받은 현학도사는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를 써서 공명첩을 만들었습니다. 임진, 병자 양란 이후 나라는 모자라는 재정을 보충하려고 이름은 적혀있지 않고 별장이란 벼슬 이름만 적힌 “둔별장첩” 곧 공명첩을 돈으로 팔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돈은 많은데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공명첩은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다지요. 바로 현학도사도 은화를 벌기 위해 공명첩을 가짜로 만들어 마구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종이로 은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속여 은화를 벌어들인 것이지요. 둔갑술도 서유기의 손오공이 부린 복제술도 아닌 사기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것은 들통나고 그를 따르던 한 사람에 의해 역모죄로 고발당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결국, 이 사건의 중심인 현학도사는 물론 이 모임 사람들은 60여 명이나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많은 사람이 숨지게 됩니다.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남을 속이고 일확천금을 꿈꾸던 현학도사와 종이로 은을 만든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로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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