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월이다. 벌써 많은 꽃이 피었다 졌다. 아직 피지 않은 봄꽃도 많겠지만 그것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봄날도 예년처럼 자취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 사라지는 꽃을 아름답게 노래한 시에 지훈이라는 아호를 썼던 조동탁(1920∼1948) 시인의 「낙화(落花)」가 있다. 워낙 유명한 시라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봄을 보내며 입에 올려 가만히 새겨볼 만한 시라 생각하여 옛 기억도 소환해 보시기를 겸해 전문(全文)을 소개하고자 한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시의 말하는 사람은 밤새 잠들지 못하고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한 사람이다. 꽃이 지는 것은 당연히 바람의 탓이 아니다. 만물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이른바 숙명(宿命)일 것인데, 안됐지만 사람도 이 덧없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기에 꽃이 지는 것이 더 슬픈 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2연의 별빛이 듬성듬성 사라지는 것은 차차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을 가리키는 것일게고 3연의 귀촉도(歸蜀途)는 밤새 피를 토하며 애절하게 울어 진달래꽃이 붉게 물들었다는 전설을 가진 새다. 옛날 촉나라 황제였던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 이 새가 되었다는 사연이다. 두견새를 가리킨다고 한다. 귀촉도 울음은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잘 전달해 주는 도구로 이해하면 되겠다. 5,6연의 꽃잎이 비친 미닫이가 은은히 붉은 모습과도 잘 어울린다.

7연의 ‘묻혀서 사는 이’는 세상의 명리(名利)를 떠난 사람이다. 이 시가 일제강점기 말엽에 지어진 시이므로 일제에 영합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자세를 살필 수 있겠다. 적막한 은둔의 시대에 마음 붙였던 꽃이 지는 아침을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울고 싶다’로 표현한다. 심약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연과 숙명, 속세의 삶과 대비되는 은둔의 세월이 ‘낙화’의 정서와 잘 어울렸다고 하겠다.

이 봄이 간다고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마음이 정상적이라는 평을 듣기 어려울 줄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하지만 가는 봄을 그냥이야 보내겠는가. 세월을 마냥 보내기만 하겠는가. 그 세월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겸손하게 되새겨보고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의 운명을 때로 헤아려보아야 하지 않을 것인가.

마침 오월은 기념할만한 날이 많은 날이다. 아름다운 계절에 인연 맺은 귀한 분들과의 지난 일을 되새기고 가능하다면 소식이라도 전하는 일이야말로 이 봄날의 꽃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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