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 달의 인물 : 이미경 푸드트럭 사장

9년째 용현면 ‘금문 해양 소공원’을 지키는 이미경 푸드트럭(사랑을 볶는 카페) 사장.
9년째 용현면 ‘금문 해양 소공원’을 지키는 이미경 푸드트럭(사랑을 볶는 카페) 사장.

[뉴스사천] 사천의 4월엔 왠지 바닷가에 나가고 싶다. 활기 솟는 도심의 항구도 좋지만, 한적한 해안도로의 어느 자락이어도 좋겠다. 바람에 은은하게 갯내가 묻어 있고, 멀리 아지랑이가 일렁이면, 봄이 성큼 우리 곁에 왔음이다. 그때, 따뜻한 차 한 잔으로 긴 겨울을 이겨낸 내 몸에도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림 같은 바다와 따뜻한 차 한 잔’

마침 꼭 알맞은 데가 있다. 용현면에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금문 해양 소공원’이다. 풍차 모양을 한 작은 건물과 공중화장실이 있어 ‘아, 그곳!’하고 바로 떠올릴 이가 더러 있을 테다. 바다 쪽으로는 부잔교와 예쁜 조형물이 있어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굳이 저물녘 노을과 어우러지지 않더라도 늘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곳이 더욱 멋스러운 건 이미경(54) 씨와 그의 푸드트럭 ‘사랑을 볶는 카페’가 있어서다. 

‘사랑을 볶는 카페’는 사천시가 영업을 허가한 ‘제4호점’ 푸드트럭으로, 해안도로의 작은 휴게소 같은 역할을 한다. 지역 주민들에겐 사랑방이요, 외지에서 온 방문객에겐 관광안내소 같은 곳이다.

“오래전부터 카페를 운영하는 게 꿈이었어요. 돈이 넉넉지 않아서 미루고 살았는데, 어느 날 TV에서 푸드트럭을 양성화한다는 뉴스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 저거다!’ 했죠. 그때가 2014년이었는데, 곧바로 푸드트럭 관련 정보를 알아봤어요. 이어서 푸드트럭을 구입했고, 바로 이 주변에서 영업을 시작했어요. 2년쯤 지나 사천시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았어요.”
 

‘사랑을 볶는 카페’는 사천시가 허가한 푸드트럭 제4호점이다.
‘사랑을 볶는 카페’는 사천시가 허가한 푸드트럭 제4호점이다.

훈훈한 단골과 사연이 가득한 카페

이 씨의 고향은 전북 익산이다. 언젠가 사천을 거쳐 남해로 여행을 왔다가 남해안 풍경에 반해 정착했고, 푸드트럭을 운영하기 전까지는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사천에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만나니 카페를 운영하고픈 마음이 더욱 꿈틀거렸고, 끝내 실천에 옮겼다.

 “사실 시작할 때 돈이 너무 없었어요, 집도 사글세였고. 푸드트럭도 대출받아 샀어요. 처음엔 손님이 너무 없어 허탕 치는 날도 많았어요. 가끔 손님이라도 오면 ‘어떻게 푸드트럭 할 생각을 하셨어요?’라며 묻기도 하더라고요. 수입이 거의 없어 밤에는 대리운전을 해야 했어요. 푸드트럭으로 정식 허가를 받은 뒤에도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3년은 버텨 봐야지’하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한 4~5년 하니까, 그때부터 단골이 생기더라고요.”

‘사랑을 볶는 카페’는 하나둘 단골손님이 생기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늘 한곳에 있으니 입소문이 난 것이었다. 단골 중에는 자동차로 지날 때면 꼬박꼬박 들러주는 이도 있으나, 사실 이보다 더 큰 단골은 그곳 주민이었다.

“결국은 주민들이 도와주셨어요. 마실 나왔다가도 오시고, 들에 일하시다가도 오시죠. 흙 묻은 장화에 작업복 바람으로도 부담 없이 다녀갈 수 있으니, 어르신들도 좋아해요. 행여 쉬는 날에는 ‘하루 없으니 너무 휑하더라’하고 말씀해주실 땐 큰 보람을 느껴요. 지금 주위에 계신 분들도 거의 단골손님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 오후,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무렵의 해양소공원에는 여러 무리의 손님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들이 많았고, 평소에 잘 아는 듯 이 씨와도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분명 따로 온 듯한 손님들인데도 서로 반가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이곳이 사랑방을 넘어 ‘만남의 광장’임을 짐작하겠다. 역시나, 이 씨는 푸드트럭 앞에서 30년 만에 지인끼리 우연히 만나는 모습도 보았단다. 그 비슷한 일들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이런 이미경 씨는 지난해 단골손님들의 사랑을 새삼 깨달았다. 뜻밖의 사고가 계기였다.

“펄펄 끓는 물을 쏟았어요. 비좁은 공간에서 실수로 부딪힌 거죠. 발목 양쪽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됐는데, 단골손님들이 병문안을 온 거예요. 병실 환자분들이 ‘사장님 인생 잘 살았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땐 보람과 감동이 한꺼번에 왔던 것 같아요. 저를 걱정하고 기다리는 손님들을 생각해서 완치가 안 된 상태로 양쪽 발목에 붕대를 감고 카페 문을 열었어요.”

이미경 사장은 손님과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이미경 사장은 손님과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손님 이야기에 맞장구치기도 내 일”

‘사랑을 볶는 카페’의 영업 시간은 오전 9시부터 해 질 녘까지다. 겨울엔 오후 6시, 여름엔 오후 8시까지 가능한 문을 연다. 매주 금요일은 쉰다. 예전엔 쉼 없이 일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자꾸 아픈 데가 생겨 마음을 고쳐먹었다. ‘즐겁게 오래 일하기 위해 쉬어 가자’라고. 또 ‘기왕이면 예고 없이 쉬는 것보다 정해 놓고 쉬는 게 낫겠다’라고 판단했다.

이 씨가 카페 문을 열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변 청소다. 꽃을 심거나 나무에 물을 주는 등 화단을 가꾸는 일도 잊지 않는다. 특히 주말과 휴일을 보낸 뒤엔 청소거리가 한가득 이다.

“갯벌체험이나 차박, 야영하시는 분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는데 집으로 돌아가실 때 본인들 쓰레기는 챙겨 가시면 주변 환경이 훨씬 깨끗할 것 같은데 아쉬운 현실이에요.”

하루 중 손님들이 즐겨 찾는 시간은 점심시간이 지난 뒤부터다. 아무래도 식사를 끝낸 뒤 입가심을 생각하는 이가 많은가 보다. 이 씨는 그들에게 차만 팔지 않는다. 말벗이 필요한 이에겐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광 정보가 필요한 이에겐 지식과 정보력을 총동원한다.

“요즘 1인 가구가 많아졌잖아요. 오시는 분들은 세상 사는 이야기나 고민거리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하는데, 옆에서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해요. 이게 세상 사는 맛 아닐까요? 가끔 타지에서 여행 오시는 분 중에는 사천에 가 볼 만한 곳이나 사진 찍기 좋은 곳 등을 물어보는데, 사천케이블카와 초양섬의 아라마루 아쿠아리움, 그리고 해안도로의 일몰 등을 추천해 주고 있어요. 그럴 땐 내가 사천시 홍보대사가 된 것처럼 뿌듯할 때가 있어요. (웃음)”
 

‘사랑을 볶는 카페’는 금문 해양 소공원에 있다.
‘사랑을 볶는 카페’는 금문 해양 소공원에 있다.

“언제나 이 자리에 있을게요”

이렇게 말하는 이 씨는 정작 본인은 사천바다케이블카나 초양섬의 아라마루 아쿠아리움을 이용해 보지 못했다. 너무 바빴던 탓이다. 이번 봄을 넘기지 않고 꼭 체험해 보겠노라는 의지를 밝혔다. 그의 남은 꿈은 소박했다.

“예전엔 사람들이 이 해안도로의 멋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무지갯빛 도로로 바뀌고, 예쁜 조형물이 들어선 뒤에는 멋진 관광명소가 됐어요. 저도 작은 힘이나마 보탠 것 같아 기분 좋아요. 풍광 좋은 이곳에서 손님들과 오랜 시간 정을 나누며 사랑을 볶는 카페지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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