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천의 마을 숲 ⑬

코로나19로 새삼 깨닫는 것이 숲의 소중함이다. 특히나 마을 숲은 역사가 깊으면서도 늘 사람들 곁에 있어서 삶의 희로애락이 짙게 밴 곳이다. 숲 해설가와 함께 사천의 마을 숲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 편집자-

사남면 우천리 연천마을 입구에 있는 연천숲. 숲 자체가 마을의 일부이면서, 마을 뒷담 너머가 숲인 경상남도 기념물이다.
사남면 우천리 연천마을 입구에 있는 연천숲. 숲 자체가 마을의 일부이면서, 마을 뒷담 너머가 숲인 경상남도 기념물이다.

연천숲은 사남면 우천리 연천마을 입구에 있는 숲이다. 숲의 면적은 3,700㎡정도이다. 느티나무, 팽나무, 말채나무, 이팝나무 등 키 큰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연천숲은 풍수 사상에 따라 터가 허한 곳에 숲을 조성하여 보완하는 전형적인 인공 비보림(裨補林)이다. 바람을 막고, 아름다운 풍광을 더해주면서 500년 전부터 함께 마을을 이뤄왔다. 나무 밑동부터 줄기 윗부분까지 속이 비어 구멍이 뚫려 있고 깊은 골 드러낸 뿌리를 덮은 이끼가 숲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다. 숲 가장자리에는 누군가 살았을 낡은 집터와 돌담이 남아있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마을 뒷산이 황토산으로서 소의 살점에 해당하는데 마을 앞에 흐르는 죽천강 너머 동쪽 산은 솔개(鳶)가 날아와 앉은 모습을 닮았다. 이는 마치 솔개가 살점을 덮치려는 형상이어서 이를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숲을 조성했다. 솔개의 눈을 가리려 한 셈이다. 연천(鳶川)마을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마을 앞에 있는 산이 험준한 돌산이라 강한 기운을 막기 위해 숲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연천을 ‘비린내’라 불렀다. 지금도 연세 많은 어른들 사이에 ‘비린내’라 불리고 있다. ‘비리’는 ‘벼랑’의 토속어라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나무로 덮여 험한 마을 돌산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나무 밑동부터 줄기 윗부분까지 속이 비어 구멍이 뚫려 있고 깊은 골 드러낸 뿌리를 덮은 이끼가 숲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다.
나무 밑동부터 줄기 윗부분까지 속이 비어 구멍이 뚫려 있고 깊은 골 드러낸 뿌리를 덮은 이끼가 숲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다.

연천숲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마을의 지형적 결함을 보완한 슬기를 알 수 있는 훌륭한 자연유산이다. 이를 높게 평가해 경상남도는 1994년에 도 기념물 제 141호로 지정하였다. 경상남도의 관리를 받고 있기에 나무 한 그루도 허가 없이 벨 수 없다. 지금의 마을 회관을 짓기 위해 나무 두 그루를 베어야 할 상황일 때도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사천에서 마을숲이 도 기념물로 지정되기로는 연천숲이 유일하다. 연천숲은 전형적인 비보림(裨補林)이면서 경치도 아름다운 풍치림(風致林),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정자림(亭子林)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긴 세월 그 많은 역할을 다하느라 나무는 곳곳에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숲을 이루고 있는 느티나무, 팽나무, 말채나무, 이팝나무는 제 각각의 역할이 있다. 느티나무는 줄기의 큰 구멍을 드러내고도 우람함을 자랑하며 숲의 입구를 지키며 서 있다. 가지를 옆으로 넓게 펼치며 짙은 녹음을 만들고,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까지 물들이니 정자나무로서는 제격이다. 느티나무는 나무속이 황갈색이라 한자로는 황괴(黃槐)라 한다. 팽나무는 아이들과 가장 친근한 나무이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아이들의 장난감인 팽총의 총알로 팽나무의 열매가 사용되었다고 하여 이름도 팽나무이다. 달콤한 육질로 싸여 있는 열매는 배고픈 아이들의 간식이었다. 말채나무는 말의 채찍으로 사용하였다고 해서 ‘말채찍 나무’에서 말채나무로 변하였다. 가지가 가늘고 길며 잘 휘어지면서 낭창낭창하여 말의 채찍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숲의 이팝나무는 칙칙할 수 있는 숲을 환하게 만들어준다. 5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는 하얀 꽃이 수북하게 쌓이면 꽃을 보러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이팝나무 흰꽃을 보며 한해 농사를 점쳤으니 이팝나무는 기상목(氣象木)의 역할도 하였다.

작가 김훈은 그의 산문집 <자전거 여행>에서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속에 온 것 같다. 숲은 산이나 강이나 바다보다도 훨씬 더 사람 쪽으로 가깝다. 숲은 마을의 일부라야 마땅하고, 뒷담 너머가 숲이라야 마땅하다’라고 했다. 연천숲에 꼭 어울리는 글귀이다.

-연재 끝-

※이 글은 사천시 녹지공원과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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