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최소한의 선의

『최소한의 선의』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
『최소한의 선의』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

[뉴스사천=박금미 삼천포도서관 사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조항이 이렇게 가슴 뛰는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대사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에게 법은 어려운 것, 법률가의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 책은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유감」 등의 저자이며 「미스 함무라비」의 극작가이기도 한 문유석 작가가 23년간 법관 퇴직 후 헌법의 근본 가치들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적은 법률 에세이다. 헌법의 가치를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여러 사회적 문제를 예로 들어 풀어내었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라고 정의한다. 법이나 도덕은 차갑게 느껴지지만 선의는 따스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헌법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며 인간의 존엄성은 칼 같은 논리가 아니라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며 불끈 치밀어오르는 감수성이 법조문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란 절대 왕권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국가권력만이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아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넘쳐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 기업, 낙오된 이들을 가스라이팅하며 군림하는 종교집단들,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개인을 공격하는 군중, 사생활 폭로 유튜버 등도 억압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왕이나 귀족에 대항하기 위해 다져진 법리로 지금 시대의 자유에 대해 논하기는 쉽지 않은 요즘 자칫 온갖 법률을 양산하여 법률만능주의, 법 포퓰리즘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계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자칫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한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에 대한 반발로 연결되는 것에도 우려를 나타낸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적 파이가 적어질수록 시험, 능력, 경쟁을 극단적으로 찬양하고 그 외의 가치를 불순물 취급하며 배격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경쟁 근본주의, 시험 만능주의가 공정한 사회라면 이런 기계적 공정이 판치는 사회에 살고 싶은지,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할지 되묻는다.

박물관에 박제된 개념이나 제도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치의 충돌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노력의 산물로써 법은 딱딱하리라는 편견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어렵지 않게 읽힌다. 여론몰이, 편 가르기, 약자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온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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