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천의 마을 숲 ⑫
코로나19로 새삼 깨닫는 것이 숲의 소중함이다. 특히나 마을 숲은 역사가 깊으면서도 늘 사람들 곁에 있어서 삶의 희로애락이 짙게 밴 곳이다. 숲 해설가와 함께 사천의 마을 숲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 편집자-
[뉴스사천=박남희 시민기자/숲 해설가] 월성못숲은 사남면 월성리 월성못에 있는 숲이다. 빙둘러 선 나무들이 못을 감싸며 자연스럽게 숲이 되었다. 입구에 선 안내판에는 월성소공원이라고 되어 있다.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깊은 그늘과 못 가득 피어나는 분홍빛 연꽃이 더해지는 한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제는 꽤 유명해져 못과 숲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행정에서는 못보다 ‘소류지(沼溜地)’란 표현을 주로 쓴다. 월성소류지 또는 지내소류지라고 불린다. 소류지(沼溜地)란 하천이 잘 발달되지 않은 지역에서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작은 저수지를 말한다. 댐, 저수지, 소류지, 못, 둠벙(웅덩이) 등 농업을 주로 해왔던 한반도 곳곳에는 공공 관리주체나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는 물 저장소가 여럿 있다.
월성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월성못이라 불러 왔다. 월성못이 익숙하니 여기서는 이 이름을 쓰는 게 알맞겠다. 월성못 아래로는 너른 들녘이 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월성못이 책임졌다. 월성못숲은 못의 둑에 해당한다. 월성못숲에는 대표적으로 소나무와 팽나무가 멋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못에는 오래전부터 연꽃이 자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못 가운데를 가로질러 탐방로가 들어서 있어 연꽃이 필 때면 가까이에서 연꽃을 볼 수 있다. 바로 옆 아파트 주민들이 주로 탐방객이다. 연 꽃 구경도 하고 짙은 그늘에서 휴식도 취할 수 있는, 작지만 귀한 숲이 월성못숲이다.
월성못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의 크기를 보면 수령이 꽤 많을 성싶다. 200~300년은 족히 될 것 같다. 그만큼 월성못의 역사도 길다는 얘기다. 조선 후기(1872년)에 만들어진 지방지에 연못의 표시가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그 이전부터 이 못과 숲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계절 농사를 살피는 농부처럼 들녘을 바라보고 선 소나무의 모양새는 한층 멋스럽다. 한 뿌리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하늘로 솟구친 소나무, 껍질이 벗겨져 붉은 속살을 드러내어 적송(赤松)임을 알리는 소나무도 있다. 또한 굽이굽이 꺾인 줄기는 세월의 풍파를 적지 않게 겪었음을 보여준다. 옛적엔 더 많은 소나무가 줄지어 서서 숲을 이뤘을 것이다. 생명을 다한 소나무도 보인다. 논두렁을 정비하고, 마을 길을 내면서 소나무는 점점 자람터를 잃었을 것이다.
숲의 팽나무도 크기가 엄청나다. 나무줄기가 아래부터 여러 줄기로 올라와 누운 듯 비스듬하게 자라는 게 특징이다. 마치 여러 나무인 듯 보이나 한 나무이다. 팽나무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만큼 오래 산다. 힘겨워 보이는 모양새에 비해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긴 세월 꿋꿋하게 살아온 듯싶다. 팽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도 끄떡없다. 흔하고 친근한 서민의 이미지까지 가진 탓인지 농사에 얽힌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봄에 일제히 잎이 피거나 윗부분부터 싹이 트면 풍년이며, 그 반대면 흉년이라는 말이 전한다. 즉 기상목(氣像木)의 역할을 해왔다. 월성 못숲의 팽나무도 너른 들녘을 바라보면서 풍·흉년을 점쳐오지 않았을까.
월성마을의 못과 숲은 산책로이자 운동하기에 좋은 소공원이다. 가까이 있는 주민들이 잠시 나와서 쉬었다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숲에서 느끼는 평안과 여유, 들녘을 바라보는 멋진 풍광을 더 많은 이와 누릴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이 글은 사천시 녹지공원과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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