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사천=월주 윤향숙] 어릴 적 아버지는 산에서 나무 한 짐을 해 오시면 그중 손목만 한 나뭇가지를 낫으로 다듬어 팽이를 만들어 주셨다. 지금 내가 나무를 접하고 만지는 일은 남다른 것이 아니라 이렇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생 도화지에 색을 칠하고 싶어 시작한 게 서각(書刻)이다. 서각(書刻)이 낯설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예술 분야이다.

서각은 크게 전통서각과 현대서각으로 구분하는데, 전통서각은 전통 서예 작품의 서고를 바탕으로 문자 의사 전달과 기록을 주목적으로 새기며, 현대서각은 문자 의사 전달보다는 시각적, 미적 추구를 위주로 하며, 문자 형상을 지키기보다 작가의 창작 정신을 앞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통서각의 예로 팔만대장경 또는 사찰의 현판, 주련 등이 있다. 팔만대장경에 사용된 나무는 주로 해안지대인 제주도, 완도, 거제도 등에 서식하는 산벚나무를 사용했으며, 나무 부패를 막고 방충을 위해 바닷물에 절인 다음 그늘에서 서서히 건조한 후 글을 새겼다.

수많은 나무 중에 왜 산벚나무를 사용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여러 차례 판본을 해도 나무의 뭉그러짐이 적을 만큼 단단한 소재여야 하는데, 거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산벚나무였을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만들 때 한식과 중식, 일식의 칼 종류가 다르듯, 서각도 전통서각과 현대서각의 칼 종류와 칼을 사용하는 기법 즉, 도법(刀法)이 다르다.

전통서각에는 주로 창칼을 사용하는데, 양면날과 편도날이 있다. 칼등을 쇠망치로 두드리며 작품 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서각은 창칼, 평칼, 평끌을 사용하는데, 끌은 주로 바닥(배면)을 처리할 때 역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때 평칼과 평끌에 사용하는 나무망치는 주로 박달나무를 사용한다.

찬 겨울 얼음 속을 뚫고 물방울이 떨어진다.

망치가 조각도를 두드리는 소리처럼 ‘똑 똑 똑’ 마음의 문이 열린다.

나무가 나무를 두드리고 나무가 나무를 드러낼 때 작가의 마음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향한다. 비움을 배우는 예술이 곧 서각(書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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