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어느 동네책방에 들렀습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곳에 자리한 책방이었습니다. 이따금씩 그 앞을 지나치긴 했지만 그때마다 갈 길에 쫓겨 한번도 들르지 못해 늘 아쉬움이 묻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뒷일에 대한 생각을 통째로 접고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공간은 작지만 아담했습니다. 책들이 알뜰하게 놓여 있었는데 마치 책이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들었습니다. 어떤 녀석은 눈이 달려 있어 빤히 쳐다본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눈대중으로 봐도 낯선 제목들이 많아 새로 나온 책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쪽에는 가볍게 차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대화를 나누도록 탁자와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시선을 잡아끈 건 몇 몇 책 표지에 붙은 작은 쪽지post it였습니다. 노란 색, 분홍색, 파란 색 쪽지에 작고 예쁜 글씨로 책에 관한 간략한 소개나 정보, 개인적인 느낌을 적어 놓았습니다. 무뚝뚝하고 멋쩍게 책만 쭉 나열해 놓은 게 아니라, 찾아오는 손님을 따끈따끈 맞이하는 책방 주인의 정성스럽고 세심한 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맛보기로 써 놓은 쪽지글은, 독자로 하여금 책을 조금은 알게 하고 조금은 더 친숙하게 지은이와 글의 세계에 다가가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간 길벗과 두리번두리번 책을 훑어보고는 각기 한 권씩 골라잡았습니다. 나는 강연과 연설이 대부분인 산문집 『보이지 않는 잉크』(토니 모리슨 지음)를 선택했습니다. 굳이 이 책을 집은 이유를 들자면 작가의 한 마디 외침이 가슴에 꽂혔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 한다.”

책 읽기를 단지 취미로 묶어 두기엔 마음이 허용치 않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는 글을 통해 글쓴이와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노동입니다. 지식을 얻고 지혜를 깨닫고 푸른 들녘과 하늘에 무한한 상상의 힘을 펼친다면 그래서 민중의 삶이 나아지는 현실이 거침없이 다가온다면 그보다 더한 가치로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책을 기준 삼아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여가 시간에,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입니다. 책을 만나 자신의 인생에 작고 큰 변화가 일었다면 그는 이전의 삶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배움과 깨달음만큼 즐겁고 거룩한 영역은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글을 읽는 사람도 책을 스승이라 이르는 까닭입니다. 

다만, 경계할 점은 어떤 내용의 책과 벗을 삼느냐 하는 난제입니다. 책을 읽는다 해서, 더 많이 읽는다 해서 혹은 아예 책을 읽지 않는다 해서 이를 근거로 사람의 선악을 말하고 능력을 판단하고 대인배와 소인배로 가를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꾀한다는 몸부림은 보편적인 의미와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부족함을 채우는 외로운 작업입니다. 지적 정서적 갈증을 느낀다면, 해갈을 책에서 구하면 좋겠습니다. 인생 역정에서 개중 그래도 가장 덜 후회할 거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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