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인물탐구] 소설가이자 역사가, 범보 김인배 ③

소설가이면서 역사가로 평가받는 범보 김인배 선생. 그의 고향은 사천 삼천포이다. 그러나 고향을 오래 떠나 있던 탓에 지역에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이에 뉴스사천은 범보 선생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글쓴이는 범보 선생의 누이동생이기도 하다. -편집자-

작가는 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삼천포’를 떠올린 듯 하다. 사진은 삼천포항 방파제 등대.

[뉴스사천=김도숙 시민기자] 김인배 작가의 소설 『환상의 배』,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 등에는 삼천포 바다가 여러 형태로 묘사되고 있다. 삼천포 바다는 작가가 태어나서 청소년기를 보낸 곳으로 꿈과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소이다. 삼천포 바다는 감수성 풍부한 어린 영혼에 영향을 주었다.  

비록 지금은 사천시로 지명이 바뀌긴 했지만, 작가는 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삼천포’ 고향 바다를 떠올렸다. 

김인배의 바다, 삼천포의 바다로 이어진 길은 호수 같은 잔잔함으로 다가온다. 삼천포의 바다와 섬과 하늘은 그림 같은 풍광을 빚어낸다. 이 풍광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취하게 만든다. 

한려수도(閑麗水道)라는 이름만큼 삼천포 바다는 동해의 탁 트인 바다, 서해의 어느 바다나 제주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와는 또 다른 질감의 색을 띠고 있다. 

삼천포의 바다, 그 중에서도 소설가 김인배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소설 속에 투영된 대방동 ‘각산개(角山浦)’와 실안의 ‘얕은개’는 그 빛깔이 남다르다. 

이 두 ‘개’ 앞의 바다 위에는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섬들이 촘촘히 놓여있다. 어느 ‘개’에 선다 한들 오른쪽 끝의 딱섬에서부터 병풍처럼 바닷바람을 막고 서 있는 마도, 저도, 늑도, 초양도, 모개도, 학섬을 차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자그마한 섬들의 뒤편에는 남해군의 산들이 우람하면서도 희미하게 버티고 있는 게 보인다.

김인배의 바다는 설화적, 종교적, 철학적 성찰의 바다이다. 소설 『환상의 배』에서 ‘흰 수염 할아버지’를 묘사할 때, <떠나온 용궁>, <수구초심의 한결 같은 눈빛>, <언젠가 떠날 자기의 여행이 어떻게 끝날지를 묻고 있는> 등의 환상적이고 철학적인 어휘들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각산개, 얕은개 앞바다의 무엇이 김인배 소설가를 관념적이고 사색적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닫혀 있는 듯하면서도 열려 있고, 열려 있는 듯하면서도 닫혀 있는 이 바다의 묘한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곳 각산개와 얕은개의 바다는 개방적인 이미지와 폐쇄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개방적이지만, 저 여러 섬들로 막혀 있고, 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점에서는 폐쇄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바다를 통해 사물과 현상의 양면을 보는 법을 관념적으로 터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가는 생전에 외할버지의 멸막(소금물로 멸치를 삶는 조그만 움막)이 있던 시절과 『바다물결에 반질반질 닦인 매끄러운 잔돌이나 조개껍질로 오만가지 형태를 만드느라고 해 저무는 줄 몰랐던』 아련한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소설대로라면 그는 그 시절에 지금은 거의 없어진 모래밭에 누워 ‘늑도’ 물밑에서 고둥이 우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또,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초월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해가 이울고 놀이 퍼지기 시작하자 물 색깔이 좀 전과 달라졌다. 달라지는 속도가 놀랍도록 재빠르다. 그것을 작가는 “바다 색깔은 열세 가지”라고 말하였다. 

대학교 때까지 서양화를 그렸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먼 수평선 쪽의 바다는 연옥색, 폭풍이 올 무렵의 바다는 인디고 블루(쪽빛)이다. 해가 서산에 걸리기 직전의 바다는 청록색 -군청색- 암청색으로 변한다.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는 안개에 싸인 듯한 우윳빛이었다가 놀이 지면 은황색- 연자색-주황색 - 적황색- 자주색- 진주홍색 천으로 맵시를 바꾼다. 그리고 맑은 한낮에는, 가까운 바다는 진초록, 먼 바다는 청회색이다.” 

날이 저물어서 각산개의 바다를 떠난다. 이내 시내의 불빛이 보인다. 저 불빛들을 바라보는 심사(心思)는 소설 속의 성인이 된 ‘나’가 느꼈던 애수와 비슷할 것이다. 이제 그 관념의 바다를 떠나 관계와 관계 속으로, 아웅다웅하는 사이와 사이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김인배 작가의 소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에는 삼천포 바다가 여러형태로 묘사되고 있다.
김인배 작가의 소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에는 삼천포 바다가 여러형태로 묘사되고 있다.

장편소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에는 해질 무렵 실안 바다가 생생히 묘사되어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그대의 영혼이 “바다가 보고 싶다”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는 적이 있는가? (중략) 남해 연안의 소도시 삼천포로 가라. (중략)
하늘과 바다가 경계를 허문 해질녘의 실안 앞바다에 서면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냥 이유도 없이 울고 싶어 못 견디는 것이다. 그 희한하고 묘한 감정의 마술적 조화는, 거제도의 도장포 마을 끝(남단)에 있는 ‘바람의 언덕’에 섰을 때와는 진정 판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남아있는 것들보다 잃어버린 것들이 가슴 아프게 저릴 때라면, 사람들은 대개 바다를 보러 간다지만, 그런 때엔 더더욱 실안 앞바다의 그 황홀한 석양은 보려들지 말 것이다.
 매일 다른 모습과 색채를 띠는 그 바다의 표정………. 하기야, 잘 보면 세상엔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실안 낙조’가 또한 잘 증명해 준다.
 거기선 시각적인 것이 정신을 압도한다. 물 빠진 포구의 고요한 개펄이 낙조 속에 아스라이 실제보다 더욱 멀어 보인다. 역광 속에 검은 섬들은 점점이 실루엣으로 떠 있다. 밀물이 다 차기 전에 진펄 위에서 조개를 파던 사람들이 서둘러야 하는 시각이다.
물살이 빠른 조류의 길목을 막고 대나무로 울타리를 엮어 발처럼 드리웠다하여 속칭 죽방렴으로 통하는 정치망에 가득 갇힌 물고기 떼를 부지런히 쪽대로 건져내던 어부들의 전마선도, 이윽고 해안선까지 가득 차오른 밀물과 함께 돌아온다. 깃들이기 직전의 수많은 새떼가 하늘에서 풍문(風紋)을 그리듯이 한참을 활공하다가 저녁먹이를 찾아 일제히 내려앉는다.
 그 시간대의 바다는 마지막 석양의 마술적 색채의 조화로 인해, 가히 현란함과 황홀의 극치를 연출한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대의 가슴은 소름이 끼치도록 움츠려 들 것이다. 두렵건대, 땅거미 질 때는 실안에 가지 마라. 저녁 바다를 보다가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 때문에, 그대의 심란한 마음은 바야흐로 거미줄에 얽혀 바동거리는 나비나 잠자리 꼴이 되기 십상이니까. 사천8경의 하나인 ‘실안낙조(實安落照)’는 ‘살인낙조(殺人落照)’로 돌변하기 여반장(如反掌)인 것이다. (후략)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