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보이스

'보이스' 영화 포스터.
'보이스' 영화 포스터.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예부터 각종 범죄의 원인으로 원한·치정·돈을 꼽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돈에 집중되는 경향이다. 아무런 원한이나 일면식도 없이 단지 ‘돈’을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그나마 안전한 편이라는 한국의 치안조차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저 극악무도하고 비현실적인 범죄가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률적 안도는 있다. 하지만 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사람을 한 방에 보내는 무서운 범죄는 생각보다 꽤 잦은 빈도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다. 대표적으로 ‘보이스피싱’이다.

치밀하고 악랄하며 광범위하기로는 ‘보이스피싱’만큼 극악한 범죄도 없다. 영화 <보이스>는 바로 이 한 통의 보이스피싱 전화로 인해 딸의 병원비부터 아파트 중도금까지 목숨 같은 돈을 잃게 된, 처참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죽을 수 없어 산 채로 지옥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이스>는 돈이 어떻게 인간을 한 방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좌표를 바꾸는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보다 현실감 있는 연출이다. 알게 모르게 현실 속 가까이 있는 공포로 자리 잡은 보이스피싱이라는 괴물의 실체를 현미경 들이대듯 보여주고 그 속 인간 군상의 면면을 훑는다. 타격감 좋은 액션과 영화적 스케일은 기대 이상이며 배우들의 연기는 몰입도를 높인다.

다만 자극적인 소재에 비해 다소 밋밋한 이야기가 흠으로 작동한다. <보이스>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복수극 혹은 속고 속이는 스릴러가 아닌 범죄의 실체에 접근하는데 주력한다. 그렇다 보니 장르적 쾌감은 약한 편인데, 역설적인 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 느껴지는 서늘함이다. 영화 속 사건들이 나와 내 가족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임을 인지하는 순간 영화를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보이스>가 스릴러임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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