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길을 일러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 ‘다른 곳으로 다닐 수 있게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숱한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냅니다. 길 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지는 해를 보내는 길 위의 인생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활동 영역을 넓혀 자동차, 오토바이, 선박, 비행기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아주 먼 거리까지 이동합니다. 게다가 취미 생활이나 여가 선용으로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전동 킥보드 따위를 즐겨 탑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짬짬이 길을 걷는 시간을 갖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 활동을 합니다. 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고 갖은 문제들을 해결합니다. 주변 풍경을 음미하며 기분을 전환하는 것은 덤입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배출하는 땀 방울이 큰 활력소가 됨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비단 걷기만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가볍게 뛰거나 온 힘을 다해 질주합니다. 힘은 들지만, 거기에는 뛰는 자 만이 누리는 싱그러운 맛이 있습니다. 희로애락이 주는 쓰디쓰거나 다디단 맛이 그러합니다. 한 걸음씩 내 디디면서 세속의 상념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맛 또한 그러합니다. 멋진 생각까지 얻게 되면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피어납니다.

나는 가끔 언덕길을 오르거나 산길을 달립니다. 서너 시간 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칩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그늘 밑에서 바람을 쐬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몸의 열기를 거둬 가는 바람에 그지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자연이 베푸는 은혜는 늘 우리 곁에 있음을 다시 확인합니다.

달리다가 너무 지쳐 그만 땅에 털썩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몸이 고달프다고 여기면 머뭇거릴 틈 없이 길 바닥에 드러눕습니다. 누운 채로 머리부터 두 팔, 몸통, 두 다리 모두 편히 뻗습니다. 몸에 평온이 찾아옵니다. 평소엔 꿈도 꾸지 못할 일을 경험 하는 순간입니다. 체력이 튼실했다면 길바닥에 눕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예전 같지 않은 몸을 자책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길바닥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눕겠다고 생각하기란 어렵습니다. 더럽다고 여기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의 기력을 회복하고 위로하려는 방편이라 할지라도 길바닥에 전신을 눕히는 일은 온전한 정신으로는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길 바닥에 누우니, 마치 딴 나라에 온 것 처럼 편했습니다. 무념무상의 경지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주위 나무들의 모습이 서서 바라 보던 때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가까이 멀리 좌우로 뻗은 나뭇가지가 생소하고 잎사귀의 밑면은 이채로웠습니다. 나무의 배경으로 깔린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고 마주 보게 되었습니다. 구름은 바람에 밀려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머리 위의 높은 데에 있지 않은 하늘, 가슴을 맞댄 하늘은 넓고 잔잔한 평화의 얼굴이었습니다. 길바닥에 누워서 본 하늘은 예전과는 다른 낙서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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