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갖은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신수도에 우보 박남조 선생 시비를 건립하는 행사를 치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이 시비가 건립된 땅이 시청에서 관리하는 땅이라는 통보를 시청으로부터 접하게 된 시비건립추진위원회의 입장이 딱하게 됐다. 허가받는 과정을 밟지 않고 시비를 설치했으니 철거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시비 건립 부지에 대해 철저한 검토를 하지 않은 시비건립추진위원회의 실수에서 이 일이 비롯되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신수도는 시비 주인공 우보 선생께서 젊은 시절 야학과 계몽운동으로 헌신한 곳이라는 데에서 오는 지역 친밀감이 있었고, 또 시비가 선 땅이 신수도를 위한 공익사업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진 섬 주민 여러분의 추천을 믿고 시비 건립 부지를 결정한 것이, 결과적으로 돌아가신 선생께 안식과 영광을 드리는 게 아닌 누를 끼치게 된 사정이 되었다. 좋은 해결방안이 도출되었으면 좋겠다.

시비가 선 신수도는 선생과 참으로 인연이 깊은 곳이다. 본 지면의 지난 회에서는 선생께서 1929년 동아일보 신춘 현상 응모에 입선하신 단편소설 「젊은 개척자」가 심훈 선생의 상록수보다 6년을 앞서 발표되었다는 점과 선생께서는 그 개척자, 상록수가 되어 신수도에서 젊음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언급해 드린 바 있다.

우보 선생을 1990년 우리 지역 동인지 마루문학 창간호에 특집 취재하신 김진환 작가의 글에 의하면, 신수도에 오기 전 선생께서는 진주의 경상남도공립사범학교에 재학 중이셨는데 그 졸업을 석달 앞둔 때 ‘동무사’라는 항일단체에 연루된 사실과 일제와 그 왕을 비난 비판한 일기장이 발각되어 그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그때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학업을 계속하러 동경으로 오라고 하여도 선생께서는 출세보다는 자기 신념을 따라 신수도를 택해 야학과 계몽운동을 펼치셨다고 하였다. 선생께서 남기신 여러 흔적을 짐작해보면, 선생께서는 평생을 이런 신념으로 사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번 지면에서 이번 신수도 시비의 시 「시아섬 등 외소나무」를 소개하면서, 그 의미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고독과, 비바람 같은 고난 속에서도 외소나무는 푸른 빛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에 있다’는 요지의 설명에 덧붙여 생전 선생의 모습을 뵙는 것 같아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노라는 말씀을 드린 것 같다. 

이번에는 선생의 면목을 드러내는 다른 작품을 소개한다. 시집 『바닷가에 살면서』에 실린 시조이다. 제목은 「信念(신념)」이다. 문학 정신은 영원하다는 뜻으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안믿은들 어떠하리/ 몰라준들 어떠하리// 나의 길 아니라면/ 아예 서서 잠들리라// 太陽(태양)은 한결 빛 솟아/ 고루 살펴 주나니.//

 막아도 가고 말리/ 끊어져도 이어 보리// 모래 알 바위 되어/ 저 하늘 둥둥 떠도// 한결 丹心(단심)의 불씨/ 연기되어 살아져도.”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