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 곤명에서 ‘멸종위기 2급’ 담비 사체 발견돼
국립생태원이 유전자 정보 분석 위해 직접 수거 나서
우동걸 박사 “새끼 갓 낳은 암컷, 남은 새끼는…”
“지리산이 담비 펌프 역할…와룡산, 연화산까지 이동”
만약 멸종위기종을 발견하면?…‘통합 콜센터’로 제보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담비’. (사진제공=국립생태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담비’. (사진제공=국립생태원)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담비. 법률(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에 포함된 동물이다. 흔히 “호랑이 잡는 담비”라는 말을 쓰지만, 담비를 직접 보았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귀함’의 반증일 테다.

그런데 이 담비의 개체 수가 요즘 꽤 늘어난 모양이다. 산과 골이 그리 깊지 않은 사천시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걸 보면 말이다. 지난 2019년 6월엔 곤양면 목단마을에서 2마리가 카메라에 잡혔고, 비슷한 무렵에 용현면 신송마을에서도 목격담과 함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김봉균 의원(사천시의회 부의장)이 제보한 찻길 사고를 당한 담비의 사진.
김봉균 의원(사천시의회 부의장)이 제보한 찻길 사고를 당한 담비의 사진.

당시에 귀한 담비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 <뉴스사천>에 제보한 이는 다름 아닌 김봉균 의원(사천시의회 부의장)이었다. 그땐 “처음 보는 동물”이라며 살짝 흥분 상태였던 김 의원이 최근에 담비 소식을 다시 알려왔다. 이번엔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담비가 차에 받혀 죽은 것 같은데...” 김 의원은 담비로 보이는 짐승이 도로 한쪽에 누워 있는 사진을 함께 보내왔다.

<뉴스사천>에선 이 사진을 국립생태원 생태평가연구실의 우동걸 박사(전임연구원)에게 전달하고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를 물었다. 그랬더니 “사체를 가지러 갈 테니 보관해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뜻밖이었다. 아무리 멸종위기종이라 해도 사체까지 챙겨갈 줄이야. 그러나 뒤이은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즘 담비 개체가 조금씩 늘고 있는데, 유전자 정보가 확보된 건 많지 않아요. 기껏해야 열 마리 정도. 그러니까 꽤 귀한 거죠. 저희가 가지러 갈 테니 내일까지만 잘 보관해주세요.”

국립생태원 우동걸 전임연구원이 담비의 사체를 살피고 있다.

이튿날 우 박사가 도착했다. 그는 냉장 보관용 상자에 얼음과 함께 들었던 담비 사체를 요리조리 살폈다. 그러곤 “암컷인데, 머리를 다쳐서 즉사했을 것”이란 진단을 내렸다. 이어진 짧은 탄식.

“어? 젖꼭지에 젖이 맺히네!”

 

사천에서 찻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담비.
사천에서 찻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담비.

우 박사가 말끝을 흐렸다. 그의 설명을 덧붙이면, 담비는 보통 3~4월에 새끼를 낳는단다. 그러면 수컷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암컷 홀로 새끼를 돌본다는 것. 그런데 어미가 이렇게 죽었으니, 남은 새끼도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설명을 듣는 쪽에서도 함께 먹먹한 상황.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등 야생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진 한반도에서 사실상 대장 노릇을 하는 게 담비다. 담비는 멧돼지 새끼서부터 웬만큼 자란 고라니까지 사냥한단다. 들고양이도 담비에겐 그냥 ‘밥’. 50~60cm의 몸집에 가늘어서 ‘싸움이나 제대로 할까’ 싶지만,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꽤 영리하면서도 사납단다.

담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우동걸 전임연구원.
담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우동걸 전임연구원.

우 박사에 따르면, 서식지 파괴로 1990년대까진 담비가 매우 귀했으나, 숲 환경이 좋아지면서 2000년대부터 개체가 늘고 있다. 특히 남부지방에선 지리산이 서식 밀도가 가장 높아, 담비를 확산시키는 펌프 역할을 하고 있다. 사천시에서 발견되는 담비도 지리산에서 낙남정맥을 따라 옮겨왔을 가능성이 크다. 사천의 남쪽, 와룡산에서 서식이 확인된 개체도 마찬가지.

“담비의 신규 서식지 확인 목적으로 2010년과 2017년에 사천지역을 조사했어요. 처음엔 흔적을 찾지 못했는데, 두 번짼 영상으로 확인을 했죠. 고성 연화산에서도 확인되는 걸 보면 지리산에서 점점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 같아요. 물론 합천 쪽에서 내려왔을 수도 있고요.”

담비의 활동 반경은 20~60㎢. 그러니 담비의 빠른 서식지 확산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담비는 오래되고 울창한 숲을 좋아한다. 또 생태계의 맨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민가로는 잘 내려오지 않아 담비로 인한 피해 신고는 많지 않은 편이다. 다만 벌을 키우는 농민에겐 해를 가할 수 있단다.

“담비가 벌꿀을 매우 좋아해요. 그래서 꿀벌을 키우는 사람들에겐 피해를 줄 수 있어요. 하지만 꿀벌을 괴롭히는 말벌을 먹어치우니까 꼭 해만 끼치는 건 아닙니다.”

이렇듯 멸종위기 2급에 있으면서도 개체 수를 점점 늘려가는 담비. 생태계 꼭대기에 있는 그들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이번과 같은 찻길 사고다. 우 박사는 “신고로 확인되는 게 한 해 10건 정도”라면서도 “모르고 넘어가는 것도 상당할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수달이나 삵 등 다른 멸종위기종도 비슷한 처지일 테다.

“지금까지 많은 종이 사라졌어요. 먹이사슬이 무너지면 결국 인간도 해를 입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죠. 우리 곁에 있는 다른 종을 더 많이 후세에 남겨주는 일,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끝으로 궁금증 하나를 풀고 가자. 만약 도로에서 찻길 사고를 당한 야생동물을 만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가장 기본은 해당 도로의 관리기관에 연락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면 한국도로공사, 국도면 국토관리청이나 해당 지역의 국도관리사무소, 지방도면 광역지자체나 기초지자체.

그런데 이건 너무 어렵다. 해당 도로의 관리 주체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아내기가 힘들 테니까. 이럴 경우, 그냥 해당 지자체(시·군)로 신고하면 된다. 정확한 발견 장소만 확인된다면 지자체에서 도로관리청으로 전달해 사고를 조사하도록 한다.

사체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처리한다. 국립생태원이나 문화재청 등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쓸 수도 있다. 덧붙이자면, 찻길 사고를 당한 동물의 사체를 먹는 행위, 파는 행위, 가축 먹이로 쓰는 행위는 모두 금지된다. 법적 보호종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다친 동물은 야생동물구조센터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한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통합 콜센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통합 콜센터.

만약 야생생물 가운데 멸종위기종을 발견하면? 그땐 ‘멸종위기 야생생물 통합 콜센터’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선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발견 정보 등을 제보받고, 각종 문의 사항에 대한 답변과 다양한 생태정보를 제공한다.
전화: 054-680-7272 / 이메일: jebo@nie.re.kr / 누리집: 국립생태원(www.nie.re.kr)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