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더 파더

'더 파더' 영화 포스터
'더 파더' 영화 포스터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누군가의 진심을 읽기란 참 힘든 일이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나의 진심을 아는 것이다.

영화 ‘더 파더’는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안소니의 진심과 치매환자인 안소니의 진심이 어떻게 충돌하며 파쇄되는지 그 고통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 잔혹한 현실 앞에서 영화는 드라마였다가 미스터리였다가 종래에는 공포로 장르를 치환한다. 그 중심에 대배우 안소니 홉킨스가 있다. 유행어를 쓰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이 표현이 딱 어울린다. 안소니 홉킨스가 ‘안소니 홉킨스’했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영화 데뷔작인 <더 파더>는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흥행과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추가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이 뚝심 있는 연출자는 원작이 지닌 결을 해치지 않고 영화로 옮겨온다. 다만 활용법은 다르다. 연극에서는 인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일 뿐이던 아파트가 영화에서는 공포를 만드는 또 다른 장치로 기능한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잃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의 삶은 ‘기억’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치매라는 이 무섭고 거대한 질병은 지우개로 글씨를 지우듯 한 인간의 삶에서 지나온 기억을 지운다. 어떻게 손써볼 틈도 없는 정체성 멸실의 이 공포스러운 병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다. 그 나약함이 안소니의 얼굴 표정 하나로 온갖 감정들을 거느리고 나타난다.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의 관점으로 표현되는 치매 상황은 당혹스럽고 공포스럽다. 이 흔하지 않은 상황 앞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에 전율이 인다. 필요한 감정을 적재적소에 꺼내 쓰며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그의 연기는 예술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그 어디 쯤에 그가 위치해 있음을 증명한다.

아카데미가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6개 부문에 걸쳐 후보에 오른 <더 파더>의 수상 여부도 궁금한데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아마도 남우주연상이 아닐까. 1992년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2020년 <두 교황>에 이어 2년 연속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그가 가진 오스카 트로피가 하나밖에 안 된다는 게 놀랍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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