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깨달으며]

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인정이란 흐르는 물과 같기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내리사랑에 비해 부모를 섬기는 치사랑은 너무 빈약하다고도 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에, 이 말이 절대 가치를 지닌 불변의 진리는 아니겠지요.   

내리사랑을 그린 김귀순의 「엄마에 기도」라는 시를 읽습니다. “고사상에 비럿서요/실영님요 서른 일곱 우리 아들/이한석이 장가 가게 해주소/잘난 색시보다 어짜등가/우리 아들 밥 잘 먹이는/색시 만나 짝 맺게 해주소/내는 게안으니까/저거 둘이만 잘 살면 됨니다/만 원 언지고 빌었다” 

요즘은 사십 대에 장가가는 젊은이들도 제법 흔한 시대지만, 노모에게 서른일곱의 나이는 눈엣가시 같은 아픔이요 걱정거리입니다. 며느리에 대한 욕심, 기대 모두 내려놓고 아무래도 나는 괜찮으니 그저 밥 먹고 저희 좋으면 된다는 소원을 빕니다. 고사상이 이른 새벽에 우물에서 떠 온 정화수보다 효험이 더 큰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둘 다 정성이 든 것만은 틀림없겠지요. 엄마의 마음은 자식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합니다. 바라는 대로 뜻을 이루면 엄마는 여한이 없을 겁니다. 이런 엄마의 시름을 덜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아들은 그런 엄마의 심정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요. 엄마가 품은 자식을 위한 생각은 사시사철 낮밤도 가리지 않으니 그 내리사랑의 깊이는 짐작컨대 무량대수無量大數보다 더하지 않을까요. 

소설 『보바리 부인』을 쓴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는 “사물의 이름에는 오직 하나의 명사, 움직임에는 하나의 동사, 그것을 형용하는 데에는 오직 하나의 형용사가 있을 뿐이므로, 작가는 바로 이 하나밖에 없는 말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누군가 이를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라 이름 붙였지요. 그렇다면 사람을 비롯한 어떤 동물이든 한 가지 재주는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을 ‘일물일기설一物一技說’이라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양필금이 쓴 「농사 박사」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옥상에 약 안 치고/고추 심엇다/무공애 상치도/맘 노코 뜨더 먹고/이리 가물어도 고추 열근 따서 말라낫다/공부는 몬 해도 농사는 도사다”

누구라도 타고난 소질과 재주는 갖고 있습니다. 공부 조금 못 한다고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자신이 지닌 특징과 장점을 살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잘 적응하고 이겨낸다면 적어도 그 분야에 있어선 전문 지식인이 되는 겁니다. 무농약으로 밭작물을 풍성하게 수확했으니 가슴 뿌듯하고 흐뭇함이 오죽하겠습니까. 자부심에 우쭐대며 자칭 박사라 해도 시비할 일은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 덕에 자신의 삶의 모습과 주장을 거뜬히 글로 엮었습니다. 스스로 공부를 못 한다지만 이는 겸손함의 발로일 뿐입니다. “포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지 않음을 두려워하라.” 시 「농사 박사」는 이러한 도전 정신이 낳은 출중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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