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륜휘 ‘바다가 분다’ 공방 대표

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의 이런 독백이 흐를 때,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엄마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어린 아가를 보는 울림을 주어서였다. 혜원에게 작은 숲이 있다면, 서른셋이 된 나에게는 작은 바다가 있다. 삼천포라는 남쪽 바다가 내게는 작은 숲이 되었다. 

<뉴스사천>에 ‘깨스락, 전입신고’를 기고한지도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 작년 내내 각산골에서 자고, 씻고, 먹고, 공방에 출근을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신혼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친이 집에 안 간다던 결혼한 친구의 투정을 들은 적이 있다. 경남 고성군 하일면이 고향인 내게 삼천포는 장날 장보러 나오던 생활권이었다. 장을 봤으면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 집이 삼천포에 있었다. 동금동에서 일하고 탑마트에서 장 보고 각산골로 돌아가야 하는 게 요즘 나의 삶이다. 삶은 곧 나의 숲이 될 터였다. 그래서 2020년의 마지막 해를 넘기기 전에 공방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살어리랏다’라고. 나만의 독백을 해보자면 이렇다. “그동안 나에게 삼천포는 시장과 마트 그리고 목욕탕이 있는 작은 도시였다. 사천시민권자인 나는 삼천포에 살어리랏다.” 

현재 나는 삼천포에서 공방 <바다가 분다>를 운영 중이다. 공방에서는 조개껍질과 바닷가에 버려진 유목을 수집해서 소품을 만든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는 어려운 말보다 파도에 밀려온 것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테이블 하나, 커피도 팔고 있다. 하루는 공방에 청색 모자를 눌러 쓴 중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는 표준말로 커피를 주문했다. 손님에게 나는 “서울에서 오셨어요?”하고 물었다. 그는 삼천포에 가족이 이사를 오기 전에 혼자 탐색하러 내려온 상황이었다. “저희도 삼천포로 이사 왔어요” 웃으며 대답하자 되려 손님이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이곳이 살기에 어떤지 물었다. “조금만 걸으면 남쪽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그가 궁금했던 것은 삼천포의 대기 환경이 어떤 지와 같은 좀 더 생활적인 부분의 질문이었다. 그런 부분을 고민한 적이 없었다. 까다롭지 않다는 가벼운 마음이 실은 삼천포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현타가 왔다. 

‘리틀 씨(sea)사이드’라는 제목에 쉼표가 들어가는 지점이기도 했다. 작은 것은 나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했다. 행복해지려고 더 작디작은 내 안으로만 파고들어 숨 쉬고 있었다. 살아있질 못했다. 누군가 행복은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코웃음쳤다. 정답이 너무 명확하니까 가소로왔다. 돌이켜보니 삼천포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람은 있어도 우리의 관계는 단순했다. 자주 배달시켜 먹는 가게의 사장님, 공방을 방문한 손님, 당근마켓을 거래하며 만나는 이웃들. 손님과 사장님의 관계로 이리저리 만났지 소통하지는 못했다. 나의 작은 바닷가를 찾아야 했다. 사람에게서 나는 희망을 느꼈다.

삼천포 사람이 되고 싶다면 삼천포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치는 것에 그치더라도 친절한 한 마디를 꺼낼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 고장 난 가로등 불빛에 춤추는 용기도 좋지만, 사람을 만나는 마음을 키우고 싶다. 
‘나의 독백이 당신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모르겠습니다. 흔들리고 방황하는 청춘 하나, 삼천포에 살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살짝만 웃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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