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호프'

'호프' 포스터.
'호프' 포스터.

참으로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비극에 처한 인간이 그 슬픔을 응시하고 받아들이며 정화되는 것. 카타르시스의 의미에 제대로 부합하는 영화가 <호프>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라벨유럽영화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낸 작품이지만, 북유럽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대체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심심하거나, 물 묻은 습자지처럼 깊은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호프>는 심하게 흔들리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지만 관객을 흔들지 않으며, 심심한 줄거리임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시한부를 선고받은 주인공 안야(안드레아 베인 호픽)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호프>의 어조는 시종일관 담담하다. 죽음을 앞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극적인 화해나 무엇이든 다 포용하는 사랑으로 봉합하지도 않는다. 주인공 안야는 암으로 인해 뒤틀린 일상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격동하는 감정의 변화를 겪고,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안야의 상황과 맞물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겪어낸다. 이런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안드레아 베인 호픽은 흔들림 없이 표현해 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묻게 만든다. 아울러 죽음에 관한 질문도 던진다.

죽음은 어쩌면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이지만 <호프>는 굳이 호들갑 떨지 않는다. 애써 눈물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인공이 마주한 현실을 덤덤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슬프다. 그런데 슬픔보다 더한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저도 모르게 주인공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흘리고 나면, 아마도 인생에 딱 한 번 마주하게 되는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북유럽의 영화는 겨울의 정서와 참 닮았다.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쓸쓸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이 쓸쓸하고 외롭고 서늘한 겨울 정서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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