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잔칫날'

'잔칫날' 포스터.
'잔칫날' 포스터.

예전 어느 코미디언의 눈물을 TV에서 본 적 있다. 부친상을 당했는데 본인은 쇼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웃겨야 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제는 아버지만큼 나이 든 코미디언이 흘리는 애상을 지켜보면서, 원하지 않았던 슬픔이 명치끝부터 올라와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김록경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잔칫날>을 보면서 그때가 떠올랐다. 다시 명치가 아프고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사람의 기억이란 비슷한 부분에서 자극을 받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고나 할까.

태어나는 데도 돈이 들고 인연을 맺는 데도 돈이 든다. 그리고 삶의 끝, 죽음을 맞는데도 돈이 든다. <잔칫날>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비용을 벌기 위해 남의 잔칫날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남자와 그 동생,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풍경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돈조차 없는 남매 경만과 경미가 처한 상황은 사실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나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휴학을 한 경미(소주연), 병원비가 대부분인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무명 MC 경만(하준). 두 남매가 처한 현실은 참으로 서글프고 쓸쓸하다. 돈이 없어 꿈을 유보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잔인한 현실은 남매를 궁지로 내몬다. 이들에게는 슬픔도 ‘돈’이 있어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감정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 절실하게 남을 웃겨야 하는 아이러니는 사실 블랙코미디나 소동극에 걸맞을 법한데 영화는 담담한 드라마를 택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아프다. 공감 지수를 높이고 메시지를 전하는 데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물론 영화 속 현실 풍경은 담담한 드라마로 놔두질 않는다. 일가친척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호러보다 더 호러처럼, 잔치와 장례가 위화감 없이 겹쳐지는 과정에서는 블랙코미디보다 더 웃프게 느껴지긴 한다. 소재도 주제도 현실도 참 아이러니하다. 마치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참고로, <잔칫날>의 영화 속 공간은 삼천포에서 90% 이상 촬영했다고 한다. 익숙한 곳을 찾는 재미도 함께 느껴 보시길 바란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