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고재욱 외 / 웅진지식하우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고재욱 외 / 웅진지식하우스

부모님을 모시기에 가장 좋은 거리는 얼마일까? 영국에서는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를 말했고, 일본에서는 ‘장국이 식지 않는 거리’를 측정하기도 했다. 음식을 식지 않고 따뜻하게 가져갈 수 있는 거리, 즉 멀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퇴근길에 들러 안부를 묻고, 주말이면 좋아하시던 반찬 하나 가져올 수 있다면 자식은 가족을 요양원에 보낸 죄책감을, 부모는 요양원에 버려졌다는 불안과 슬픔을 느끼지 않고 함께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저자가 7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만난 실제 치매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한 권의 단편 소설집 같다. 치매는 현재의 기억을 지우고 과거는 또렷이 되살려놓는 못된 버릇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달력이 6월에 멈춰진 분도 계신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온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는 우리를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잊었어도 손녀에게 들려주던 자장가만은 기억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한데도 눈물겹다. 책을 처음 출간한 작가라고는 믿기 어려운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가 글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파킨슨병으로 근육이 굳어가고 당뇨로 두 눈이 어두워져 가는 유독 괴팍하고 까다로운 할아버지가 있었다. 1960년대에 등단하여 소설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의 이력을 알고 나서, 저자는 자신이 직접 쓴 시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자네가 직접 쓴 시인가?”라는 말로 시작된 그와의 대화는 오랜 세월을 지나온 경험들로 저자의 마음을 자주 흔들었다. 그는 저자에게 자신의 옛 소설을 현대식으로 고쳐 써주기를 부탁했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글쓰기는 석 달을 밤새 계속해야 했다. 소설이 완성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책은 말이지. 자네를 위한 내 선물이네. 소설 한 편을 완성해 보았으니 앞으로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우리도 언젠가 자식과 후세대에 선물을 남기게 될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받은 선물을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노인들이 잃어버린 기억 속에 숨겨두었을 그 어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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