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포스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포스터.

현실에서 이루기 어렵거나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들이 영화 속에서는 이루어진다. 역경을 뚫고 성공 서사를 써 내려가는 영화가 감동적이며 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 그래서 성공담을 다루는 영화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조금 더 과장되고 신파에 엮이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스토리는 조금 더 처연해진다. 결말에서 기다리고 있을 ‘감동’을 위해! 그러다 보니 현실을 소재로 했음에도 리얼리티는 오히려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선택이 좋다.

1990년대 중반, 고졸,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말단 사원들의 고군분투는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소재인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이 빤한 소재를 세밀하고 유쾌하게 들여다본다. 기획, 시나리오에서부터 공을 들인 흔적이 영화 전편에서 느껴진다. 토익 열풍, 폐수 방류, 부당한 M&A, 내부고발 같은 무겁고 진중한 소재에 위트와 풍자를 버무리면서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을 덜었다. 어느 한구석에서 묵은 추억 하나가 툭 튀어나올 듯 세밀하게 재현된 그 시절의 풍경은 충분히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세트, 음악, 의상 등은 버릴 것 하나 없이 조화롭게 섞인다. 

여성 주인공을 단체로 내세웠음에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 흔한 연애담도, 죽자고 매달리는 신파도 없다. 여성 주인공 셋은 오롯이 자기 앞에 놓인 갈등에 주목한다.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 아끼며 문제 해결을 통해 나아간다.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담담한데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가슴은 뭉클해진다. 그 시대를 지나왔기에 공감하는 요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 여성이 위기를 함께 이기고 마침내 성장하는 그 과정이 주는 감동이 더 크다. 혼자가 아닌 모두의 힘으로 이루어낸 연대의 승리가 가진 가치는 다시 돌아와 개인의 자존을 높이는 것임을 영화는 웅변한다. “나는 뭘 위해서 일하고 있는 거지?” 라는 자영(고아성)의 대사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가슴을 울리면서 영화의 주제를 일깨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전작 <도리화가>의 잔혹한 실패를 딛고 확실히 부활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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