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소리도 없이'

'소리도 없이' 포스터.
'소리도 없이' 포스터.

오랜만에 한 마디로 정의되는 카랑카랑한 영화 한 편이 나왔다.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소리도 없이>는 영화와 현실에서 익숙하게 소비되는 이미지 혹은 이야기들을 경쾌하게 비튼다. 어린이, 핑크색, 살인, 시체 청소부, 계란 장수 같은 이미지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기괴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같은 소재라도 다루는 사람에 따라 누아르도 되고 로맨스도 되고 액션도 되고, <소리도 없이>처럼 코미디도 된다. 그런데 이 영화 그냥 블랙코미디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참신하다. 범죄를 소재로 하지만 그 어떤 범죄영화의 장르와도 공통점을 섞지 않는 기묘함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는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보내는 다정한 헌사다. 보통의 영화는 대중의 취향이라는 비상구로 빠지면서 익숙하지 않은 소재들을 익숙하게끔 만들어버리는데 <소리도 없이>는 어떠한 변명도 없이 익숙하지 않은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무겁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지극히 불친절하다. 이렇다 할 전사도 없고 개연성도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묘하게 설득 당한다. 흔하디흔한 반전에 목매지도 않고 끝까지 예측 불가능한 지점으로 달려간다. 유아인과 유재명 외에는 한국영화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낯익은 배우들 조자 보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클리셰화 되어버린 코믹씬이나 타격감 좋은 액션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군더더기 없다. 

‘영역을 침범당한 고릴라처럼’이라는 감독의 디렉션을 유아인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15kg을 증량하고 배까지 나온 그는 자신이 왜 배우인지를 온몸으로 발현한다. 그리고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으려는 듯 주구장창 성경을 읊조리는 유재명은 안쓰럽다기보다는 넉살 좋은 중년 아저씨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연덕스러운 것은 유괴당한 아이 초희 역의 문승아다. 비전형적이며 장르의 관습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는 세 배우를 만나면서 빛을 발한다. 신선하다. 

‘선의도 악한 결과가 될 수 있으며 악의도 의도와 달리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연출의 변은 이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는 듯하다. 예상과 달라서 참신하며 그 참신함을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아 힘이 느껴진다. 올해의 수확으로는 세 배우들의 인생연기도 있지만 그래도 홍여정 감독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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