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一生). 20×15. 2020.
일생(一生). 20×15. 2020.

한편으로 생각했다. 여든의 아버지가 인간의 물리적인 나이로 얼마만큼 더 곁에 생존해 계시겠는가. 조만간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내 아버지라는 이름이 지구별에 태어나 시대를 잘못 만났고 부모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여섯 번째 미역국도 못 먹었을 무렵부터 나무지게 짐을 메던 시절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학교 가는 친구들을 보며 배우고 싶은 욕망이 더 견딜 수 없었다 하셨다. 진주에서 나동을 거쳐 완사로 이어진 국도를 지나가면 아버지는 이 길을 따라 젊었던 시절 삶의 흔적을 얘기하신다. 내 나이가 이렇게 되고 보니 아버지도 한 남자의 상으로 다가왔다. 지루한 고갯길을 걸으시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셨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디다 그 무게만큼의 여자를 만났고, 그 무게만큼 아이들을 낳고, 그 무게만큼 견디며 우리를 키우셨을 것이다. 머리는 밝고 심장은 뜨겁고 처지는 어두웠던 아버지였다. 일상에서 부딪혔을 수많은 사람들과의 막막한 답답함이 얼마나 또 무거우셨을까.

새벽별을 보고 나가 세상이 조용해진 자정 무렵에야 들어오시던 그 일생에서 늘그막에 숨을 돌리고 계시는 아버지시다. 처지와 심장을 따로 분리 시켜가며 일생을 꾸역꾸역 사시다가 이젠 영원히 사라질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이런 아빠의 인생이 항상 아까웠다. 저 남자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리움보다는 많이 안타까울 것이라는 생각에 얼마 전부터 나는 조급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빠의 여든에 찾아온 최고의 호사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겠다며 속으로 박수를 쳤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있을 수 없는 최고의 행운이 아버지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아빠의 일생에서 심장 뛰는 기쁨 한번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이 세상을 왔다가는 헛되고 헛된 슬픈 아쉬움일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엄마, 그냥 서로에게 신경 좀 끄고 살면 안 되겠나? 늘그막에 뭔들 그리 중요하긋노. 엄마 니는 아줌마들이랑 동네 여자들 욕도 좀하고, 자식 자랑이나 하면서 수다 떨고 살믄 되고, 아빠는 죽기 전에 아빠 감정대로 멋대로 좀 살아보라캐라. 안 아깝나? 얼마 남았다고... 젊은것들 하는 신경전을 다 하노? 이제 뭐가 그리 중요하노?”

“가시네가, 내가 왜 이러는데... 꽃뱀헌테 걸이믄 너거 아부지 다 갖다 바칠낀데, 내는 그 짓은 못 본다. 한푼 두푼 아꼈다가 내 자식들한테 다 남겨주고 갈끼다. 남헌테 주는 거 절대 안 된다.”

“엄마 너거 자식들이 부모 돈 필요한 사람 아무도 없다. 그냥 다 쓰고 죽어야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각자가 쓰고 싶은 사람헌테 쓰고 죽어야제. 만다꼬 자식 줄끼라꼬 하노. 고마 다 써라. 어디다 쓰던지 간에. 쓰는 동안은 안 행복하지 않긋나”

“시끄럽다. 가시나 저 년도 꼭 지애비를 똑 닮아가.... 지애비랑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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