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에이바'

'에이바' 포스터.
'에이바' 포스터.

제시카 차스테인, 콜린 파렐, 존 말코비치, 지나 데이비스 등 이 쟁쟁한 배우들이 한 영화에 등장한다. 킬러물이다. 심지어 킬러는 여성(제시카 차스테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공허하기만 하다. 스토리는 가루가 되어 날리고 그나마 공들여 구축한 캐릭터도 오합지졸이며 음악은 집중을 방해한다. 연출은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한 마디로 망작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영화는 대중과 호흡하는 예술이다. 그 호흡의 기본은 이야기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고, 기시감 충만해서 너무나 빤한 이야기도 있고, 새롭지만 생뚱맞아서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이 다양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관객을 흡인력 있게 끌고 가는 것이 영화의 힘인데, 그야말로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어서 맥을 못 춘다.

임무 성공률 100%, 실패 확률 0%의 여성 킬러 에이바(Ava) 역의 제시카 차스테인은 안쓰러울 정도로 캐릭터 묘사에 공을 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캐릭터에 설득력이 없다. 냉혹한 킬러 이미지 이면의 가족사와 내면의 상처 그리고 혼란을 보여주며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보려 하지만 도무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마치 사상누각처럼 쌓을수록 바탕이 흔들리니 당연히 몰입을 방해한다. 킬러 액션물이니 치고받는 합만 좋아도 지루하지는 않을 텐데 이 또한 구태의연하다. 다른 배우들은 배경으로 보일 만큼 에이바 혼자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선보이지만 한껏 높아진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엔 너무 올드하고 무겁다. <에이바>의 교훈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대배우도, 핫한 스타도, 고군분투하는 액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헐리웃의 영화제작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확연하게 달라서 제작사와 투자사와 배급사의 입김이 무척 강하다. 그들의 탑 중에 탑 배우가 아닌 이상 이들의 시스템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연출자는 거의 파리 목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주연배우가 제작까지 겸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는데, <에이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인터스텔라>를 비롯해 전작들에서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었던 제시카 차스테인이 제작까지 겸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즉, 다양한 욕심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삐걱거렸다는 뜻이니, 아무래도 <에이바>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두고두고 흑역사로 기록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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