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니까. 20×15. 2020.
너니까. 20×15. 2020.

봉사모임에서 만난 언니는 참 풍요로웠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쥔 손이 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서른 초반에 막 시작한 경제활동에 푼푼을 아껴가며 지내기도 빠듯했고 그래서 언니의 씀씀이는 딴 세상과도 같았다. 그녀의 차 트렁크에서 꺼내 챙겨주는 먹을거리며 쓸 거리들로 내 일상을 가득 채울 수 있었고, 트렁크 안은 마르지 않는 요술 보따리와도 같았다. 종종 필요한 것을 입 밖으로 내면 발 넓은 인맥으로 모든 것이 다 가능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언니는 간혹 자기 집으로 초대해 최고의 멋스러운 요리상을 차려 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부산에서 온 내 친구를 위해 생선회며 방풍 잎이며 가리비조개며 열 댓가지 재료들을 챙겨 와서는 초밥을 만들어 냈다. 새끼 제비마냥 쉴 새 없이 받아먹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우리는 아직도 회상에 젖는다. 나보다 더 유행에 앞서 그릇들을 모으고, 나보다 더 외모를 가꾸어 한 번씩 언니 손에 이끌려 속눈썹 붙이는 침대 위에 누워 있기도 했다.  

나보다 열다섯 살이 많은 언니의 쉰을 우리는 매우 슬퍼하며 바닷가 조개구이 집에서 촛불을 켰다. 이제 내가 언니의 그때쯤이 되었다. 그때 언니는 어른도 아니었고 청년도 아니었다. 항상 먼 이후라고만 여겼더니 내가 그 시절 언니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젠 나는 젊어지고 언니는 늙어졌다. 나는 중년이 되고 언니는 노년이 되어간다. 장거리 여행에 당연히 그녀가 운전하는 차로 다녔던 것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우리는 어느새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가죽가방 만드시는 선생님의 작품을 즐겨 찾았던 그녀를 보며 언감생심 했던 것들이 이제는 내가 그곳을 찾는 여유가 생겨 버렸다.  

우리는 시절인연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붓 한 자루로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밥자리 한번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씩 길을 가다 마주치면 챙기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에 더 호들갑스럽게 안부를 묻곤 했다. 

그녀 주변에서 서예가로서의 내 얘기를 들으면 언니는 꽤나 어깨가 으쓱해 하며 전화가 걸려온다. 그 시절 동생으로만 멈춰져 있어 언니는 나의 성장을 속속히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녀를 통해 무언가를 부탁하고 싶어 하면 언니는 큰소리치듯 그 앞에서 전화를 한다.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딱 언니 닌께네 무조건 들어주는 기다이~”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