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천 출신 김록경 영화감독

영화 '잔칫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4관왕
대부분 사천서 촬영···"정서적 유대 깊은 곳이라 고집"
연말 개봉 예정···"'소중함' 되짚는 영화 됐으면"

[뉴스사천=고해린 기자] “‘잔칫날’이 4관왕을 할 거라곤 전혀 예상 못 했죠.”

검은 티셔츠에 눌러 쓴 모자, 건조함과 진지함을 오가는 표정, 담백한 말투. 7월 29일 저녁 문화공간 담다에서 만난 김록경(39) 감독의 첫인상이었다. 그에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소감을 물었다. 김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잔칫날’은 영화제에서 작품상, 배우상, 관객상, 배급지원상을 수상했다. 

영화 '잔칫날'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김록경 감독.
영화 '잔칫날'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김록경 감독.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원래 우리나라 장례식장 문화가 잔칫날처럼 시끌벅적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두 인물이 슬픔을 온전히 즐겨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거든요. 제목에서부터 역설적이면서  문화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무명 MC인 경만(하준)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동생 경미(소주연) 몰래 삼천포에서 열리는 생신 축하 행사에 가게 된다. 웃음을 잃은 어머니를 웃겨달라는 효자 일식(정인기)의 미션을 받은 경만은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소동에 휘말리게 된다. 홀로 장례식장을 지키는 경미는 점점 꼬여만 가는 오빠의 상황을 모른 채 친척들에게 시달리며 장례식장을 지킨다. 영화 ‘잔칫날’은 경만과 경미 두 남매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겪게 되는 3일을 그렸다. 

“‘잔칫날’은 음악을 듣다가 시작된 시나리오에요. 친구랑 차를 타고 가다가 이박사 노래를 들었는데 ‘좋아 좋아 내가 누구냐~’하는 곡이 있어요. 그걸 듣는데 문득 경만이라는 친구가 시골마을에서 행사를 하게 되고, 행사 주인공인 할머니를 웃겨야 되는 상황이 떠올랐죠.”

‘잔칫날’은 그가 1년 반 정도 준비해 세상에 선보인 작품이다. 첫 장편이지만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고. ‘연기의 힘’, ‘성재씨’, ‘꽃’, ‘사택망처’ 4편의 단편작품을 연출하며 차근차근 내공을 다진 덕이다. 2주 만에 쓴 ‘잔칫날’ 초고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경남독립영화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초기 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영화 '잔칫날'의 한 장면.
영화 '잔칫날'의 한 장면.

‘잔칫날’은 16회차의 촬영 중 15회차를 사천에서 촬영했다. 영화의 배경 90% 이상이 사천인 셈이다. 영화 곳곳에 삼천포대교, 산분령 낚시터를 비롯해 상궁지‧하궁지 마을, 사천경찰서, 한마음병원 등 익숙한 장소가 등장한다. 

김 감독은 영화 배경을 사천으로 고집한 것에 대해 정서적인 이유가 컸다고 밝혔다. 

“영화를 촬영할 때 인물이나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잔칫날’도 삼천포가 머니까 가급적이면 서울에서 찍자는 얘기가 있었어요. 근데 사천‧삼천포라는 공간을 포기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제 정서도 사천에 머물러 있었고, 공간 자체도 너무 익숙하다 보니까. 오히려 사천에서 촬영을 하면 서울에서 하기 힘든 것들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마산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6살 때 어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삼천포로 이사를 왔다. 영화광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일까. 어린 시절부터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터미네이터’, ‘슈퍼맨’, 홍콩 무협영화를 보던 소년은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게 됐다. 그는 삼천포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삼천포와 서울을 오가며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제 필모그래피가 독립영화 상업영화 다 합치면 100편이 넘는데, 그 과정에서 프로필을 낸 영화사만 수천 곳은 될 거예요. 오히려 영화 연출을 시작하면서 기회가 더 빨리 온 것 같아요.”

그는 연기에 이어 영화 연출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배우로 활동하며 연출을 하는 친구들과 교류하다 보니 어느새 글을 쓰고 싶어졌고, 글을 쓰고 나니 영상으로 만들고 싶어졌다고. 

“연기를 그만뒀다기보다 지금은 글을 쓰고 영화를 연출하는 쪽으로 우선순위가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연기는 20년 가까이 해왔기 때문에 기회가 있으면 계속 도전할 생각이에요. 마침 작년에 출연했던 영화 ‘여름날’이 올해 8월 20일에 개봉을 합니다.” 

김록경 감독이 사천을 배경으로 촬영한 자신의 첫 장편영화 ‘잔칫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록경 감독이 사천을 배경으로 촬영한 자신의 첫 장편영화 ‘잔칫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하튼, ‘잔칫날’은 그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터. 김 감독은 ‘잔칫날’ 수상의 공을 사천시민들에게도 돌렸다.

“사천에서 영화를 찍을 때마다 항상 사천 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감사하고 보답해야 할 부분이죠. 앞으로도 사천에서 담아내고 싶은 공간이 많이 남아있어요. 사천도 많이 변하고 있는데, 그게 좋으면서 안 좋을 때도 있어요. 어, 이거 빨리 담고 싶은데... 촬영하고 변하면 좋겠는데 하는 거죠. 그러려면 제가 빨리 다음 작품을 해야겠네요.(하하)”  

영화 ‘잔칫날’은 올해 연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영화의 키워드로 ‘소중함’을 꼽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은 사람이 한 번쯤 겪게 되는 일인데, ‘잔칫날’이라는 영화로 떠나보낸 사람과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는 바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다. 특정 장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작업하고 싶다고. 다음 작품으로는 스릴러 장르와, 가정폭력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김 감독은 끝으로 자신의 목표를 밝혔다.

“김록경이라는 영화인으로서 최종 목표는 나중에 삼천포에 작은 극장을 하나 여는 거예요. 삼일극장이었나? 어릴 때 삼천포에서 갔던 극장이 어렴풋이 기억나요. 주말에는 큰 규모의 상업영화를 상영하고, 평일에는 단편, 저예산 가리지 않고 무료로 상영하고 싶어요. 영화 소품들도 전시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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