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마음껏. 20×15. 2020.
그렇지만 마음껏. 20×15. 2020.

아침에 번쩍 눈을 뜨니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시간 맞춰 일어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고, 시간 맞춰 잠자리에 들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른 초저녁잠이 들었다가도 자정에 깨어서 해맑게 웃음이 나왔다. 새벽까지 무언가를 하다 잠자리에 누워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런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도 갑자기 혼자서 웃고 있었다. 누군가가 쳐다보면 동막골에 머리 꽃 꽂은 그 여자배우 같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20년까지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아냈고, 그 후 10년은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청춘이라 열심히 살았고, 그다음 20년은 내 인생에 책임감으로 열심히 살아냈다. 20 더하기 10 더하기 20은 50이 된다. 이제 한 해만 지나면 반백년을 살았음의 첫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큰 결단을 내렸다. 20년을 몸담아 온 서숙(書塾)을 폐원하고 돌아오는 길에 온통 전화를 돌려대고 있었다. “야! 이제 자유다. 이제야 비로소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을 부끄럽지 않게 하게 되었어.” 다들 남편과 헤어졌냐고도 그런다. 환갑의 나이를 지나 퇴직을 했느냐고 그런다. 그 자유 말고 우리 인생에 무슨 자유가 있을 수 있느냐고 그랬다. 나는 철없는 자유를 찾았고, 사랑하는 제자들은 철없는 선생 때문에 배움터를 잃어버렸다.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해야만 하는 것들이 일정표에서 지워지는 자유와 계획되지 않은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강박처럼 다가오는 완벽주의 같은 어설픈 놀음을 멈추고 싶었다. 당장 숨이 멈춰 버릴 것만 같았다. 몸이 가는 대로 살아내고 싶었고 마음 가는 곳에서 하루를 견뎌내고 싶었다. 사람 속에 살지만 사람 밖에 살고 싶었던 몸으로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여겼다. 매일매일 여행을 꿈꾸고 매일매일 여행을 계획한다. 매일매일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매일 낯선 풍경들을 상상했다. 

여전히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고, 여전히 작업을 하고 있고,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다. 여전히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껏 일상을 벗어나 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마음껏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렇지만 마음껏 글을 쓰고 그렇지만 마음껏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 그렇지만 마음껏 이제는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렇다. ‘여전한’ 것들과 ‘그렇지만 마음껏’이 일정표를 채우기 시작하고부터 내 일생에 꿈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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