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20×15. 2020.
폼. 20×15. 2020.

“집으로 들어올 때 까페라떼 아이스로 하나 사다 줘” 

아비와 아들이 밖에서 저녁밥을 먹고 있다. 나는 휴일이라 집에 남아 그동안 밀린 숙제를 하기도 했거니와 오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어디에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소파에 누워 요즘 막 시작한 운동 동영상을 보고 싶었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몸을 자유롭게 두고 싶었다. 그러다 군것질거리가 생각나 냉장고를 뒤지고는 배에서 말렸다며 영덕 지인이 보내준 마른 오징어와 터키 친구가 보내준 말린 망고를 찾아낸다. 하나 둘 집어 먹다 보니 짜고 달았는지 점점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빨리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다. 잠시 후 대문 밖에서 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아들이 먼저 집안으로 들어선다. 1분, 5분, 10분, 아니 20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들의 아비는 들어오질 않는다. 이게 도대체 뭐지! 핸드폰을 눌렀더니 “잠시만, 개 밥 좀 주고 들어갈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커피를 먼저 넣어 주고 일을 봐야 하지 않는가! 내가 개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갑자기 오르는 화를 누를 수가 없었다. 그때서야 무슨 사단이 생겼다 싶어 부리나케 얼음이 다 녹아가는 카페라떼 아이스를 들고 허겁지겁 집안으로 들어온다.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그랬지, 얼음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큰소리로 말하고는 집을 뛰쳐나와 버렸다. 

동네 입구 농협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앉아 있다.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붓는다. 차 유리창으로 세상은 온통 얼룩이 졌다. 캄캄한 세상에 신호등 불빛이 깜박거리고, 아파트 불빛이 차창으로 타고 내린다. 얼음이 녹지 않은 카페라떼 아이스를 옆에 두고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과자를 먹으며 화를 삭이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핸드폰이 자꾸 울린다. 지금 무엇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했다. 왜 나왔냐고 물었고, 까페라떼 아이스 때문에 나왔다 했다. 얼음이 좀 녹아도 마시지 그랬냐고 했고, 나는 커피와 우유의 농도가 중요하지 커피와 우유와 물의 농도는 싫다고 했다. 기왕 나왔으니 다시 사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했고, 나는 박차고 나온 폼이 무너진다고 했다. 겨우 동네 입구까지밖에 못 나갔냐 했고,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나왔다 했다. 한번 봐 주지 그랬냐고 했고, 나는 어딘가에 화를 내고 싶었다고 했다. 왜 화가 났냐고 했고, 장맛비가 계속되어 그렇다고 했다. 집 나온 무용담을 얘기하고 있으니 띵동~ 문자가 들어온다.  

“카페라떼 아이스 다시 사 왔다. 얼음 녹기 전에 빨리 집 들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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