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포스터.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포스터.

여름이 주는 이미지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뜨거움과 시원함.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두 가지 이미지가 공존하는 계절이 여름이다. 심지어 극과 극인 이 두 이미지가 서로 충돌할 때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뜨거운 태양과 푸른 바다, 그 위를 넘실거리며 부서지는 파도, 거기에다 화려한 불꽃놀이까지 모든 이미지가 차고 넘치지만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의 정서는 청량함이다. 이 산뜻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청춘들의 사랑은 예쁘고 아프고 슬픈데 이 또한 청량하다. 오늘 제대로 된 여름 영화 한 편을 만났다.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표현의 한계가 넓다는 점이지만 이게 꼭 훌륭한 결과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로 상상력인데, 이 상상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장점을 등에 업고 점프할 때 쾌감은 한계를 초월한다. 그런 점에서 유아사 마사아키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정확히 알고 활용할 줄 아는 장인이다. 그가 그리는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과감하고, 캐릭터 또한 평범하지만 엉뚱하고 매력적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한계 없는 상상의 세계에서 뛰논다. 때로는 기괴하게, 때로는 짓궂게, 때로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처럼 산뜻하게.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일종의 성장영화로 읽어도 좋은데 무엇보다 성장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스테레오타입이 아니어서 좋다. 사랑의 시작과 이별의 과정을 감독 특유의 반복과 강조의 리듬으로 따라가며 묵직한 메시지 대신 한 뼘 더 넓어진 감정의 상태를 보여준다.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비현실(환상) 속에서 관객이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물과 음악이다.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고 감정은 중첩돼 클라이맥스로 달려간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메시지보다는 이미지로 보는 영화다. 디즈니의 화려함을 기대한다면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지만 여름, 바다, 서핑을 좋아한다면 이 영화에 매혹되는데 그리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자신도 모르게 이 영화의 주제가인 ‘Brand New Story’를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리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푸른 물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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