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한번의스침. 20×15. 2020.
단한번의스침. 20×15. 2020.

흑룡강성 작은 도시 호텔방까지 아침 냄새가 들어왔다. 창을 내려다보니 불협화음의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와 서로 비껴 다니는 자전거의 번잡함과 사람들의 이국적인 언어가 가득 뒤섞여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호텔을 빠져나와 거리를 걸었다. 관광객이 머무르는 호텔 주변이라 과일 파는 장사꾼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흥정을 한다. 아침 식사거리를 만들어 파는 여자의 빠른 손놀림과 담아 들고 집으로 향하는 몸이 마른 남자의 투명한 비닐봉지에서 아침 메뉴가 보였다.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 창문에는 색이 화려한 이불이 널리고 아이의 순한 옷이 걸려 있다. 낡은 창문이 굳게 닫혀있거나 열린 창으로는 정겨움을 보았다. 골목에 세워진 자전거도, 길바닥에 뒹구는 버려진 과일도, 엄마손 잡고 지나가며 낯선 차림의 이방인인 나와 눈이 마주친 꼬마 아이도, 스치듯 만나는 모든 풍경들이 내 일생에 다시는 마주칠 일 없는 것들이었다. 느끼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생을 보내다 갈 것이다. 이 순간 옷깃이 스치는 인연으로만 관계는 그렇게 사라져 버릴 것이다. 

작업실 근처 바닷가로 나와 책을 읽고 있다. 여름날 아침이라 얼음이 잔뜩 채워진 아이스커피를 들고 풍경이 제법 그럴듯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책장이 한 장씩 넘겨질 때마다 바닷바람도 따라 넘겨졌다. 

내가 보내고 있는 일상에 사람들이 여행을 왔다. 아침 바다는 요즘 한창인 문어 잡이 배가 장관을 이루어 사천해전을 방불케 했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 사람들이 바다 주변에 쏟아지며 이곳이 관광지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해하고 많은 배들을 신기해했다. 섬과 연결된 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바다를 뒤로하고 뛰기도 했다. 속도를 즐기는 바이커들이 굉음을 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수다를 풀며 아이들 뒤를 따른다. 낯선 억양의 언어들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여행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산책을 나온듯한 내 또래 정도의 여자 셋이 사진을 찍어 달라며 다가왔다. 스치는 인연일 현지인은 읽던 책을 덮어 버렸다. “이쪽으로 조금 더 서 주시고, 여기 분은 크시니 뒤로 가 주시고, 다리가 나오지 않게도 한 장 더. 잠시만, 케이블카 몇 개 배경에 더 들어오면 그때 찍을게요.” 몰래 깔깔거리고 웃고 있는 모습도 셔터를 눌렀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 한줄기에 바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진한 여자들의 향수 냄새가 코에 닿았다.

벤치에서 책을 읽는 유럽 어느 동네 낭만만을 회상하지 말고, 삼천포 바닷가에서 그런 풍경을 보았노라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현지인 노릇 너무 길게 했나 보다. 일어서려니 현기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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