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20×15. 2020.
아련한. 20×15. 2020.

황색 물감을 풀어 물과 적당히 섞고 일필(一筆)로 둥글게 열매를 그린다. 먹색 긴 이파리 사이 노란 열매에 금방이라도 침이 뚝뚝 떨어졌다. 

중국 서화가 오창석(吳昌碩)의 비파 그림을 보는 순간, 나만 유독 침이 고이는 까닭이 있었다. 문인화(文人畵) 수업 중 동기들에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파나무를 그린다는 것은 상상화(想像畵)라 놀려댔다. 그리고는 열매가 달았고 그 색감이 얼마나 먹음직한 노랑인지를 붓으로 그려 보이며 나 홀로 추억에 젖어 버렸다. 노란 물감을 풀 때나, 비파 열매에 점(點)을 찍을 때나, 긴 이파리를 담묵(淡墨)으로 치고 농묵(濃墨)으로 잎맥을 그릴 때 나는 언제든 배고팠던 어린 제주도를 상상했다.  

돌담 너머 옆집 마당에는 다알리아가 가득했고, 그 사이 비파나무 가지가 우리 집 담을 넘어왔다. 이맘때면 노란 열매가 어린 내 손에 잡힐 정도로 달려 있어 학교를 오가며 몇 개씩 몰래 주머니에 챙기곤 했다. 열매에 씨가 반이라며 아쉬워했고, 입안에서 오물오물하던 그 씨를 누가 멀리 뱉는지 내기하며 친구와 학교로 갔다. 이제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의 첫 서리가 옆집 비파열매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노란 열매가 더 달았나 보다.  

제주도의 그 기억 이후 대구에서 보낸 대학시절 문인화 수업에서 비파가 생각났고, 이후 삼천포에서 비파나무를 세 번째로 보게 되었다. 세 번째에 비로소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천포의 여름은 집 담장 너머로 보이는 노란 비파열매로부터 시작되었다. 골목길 안쪽 빛바랜 빨간 지붕에 페인트칠이 거의 벗겨진 양철 대문 사이를 엿보는 버릇이 있었다. 저 혼자 익는 노란 비파열매가 정겨웠다. 주름 깊은 할머니가 노상에 작은 그릇을 펼치고 마당에서 익어대는 비파열매를 들고 나왔다. 이제는 잘 먹어지지 않는 비파열매를 담으며 기분 좋게 추억을 한 그릇 사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마당에 온갖 과실수가 보이지만 비파나무는 없었다. 얼른 묘목을 구해와 담장 밑에 심었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면서 어린 눈에 담았던 그 풍경에 욕심을 내게 되었고, ‘비파나무의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니 그럴듯한 영화 한 편의 제목이 되었다. 

누구는 비파나무 밑에서 붓 놀이하며 놀았었느냐 그러고, 누구는 그 밑에서 찐한 사랑을 나누었냐고 그런다. 비파나무의 추억이 어디 그뿐이겠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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