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즐기다). 20×15. 2020.
樂(즐기다). 20×15. 2020.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지만 대학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 올 초부터 시작된 바이러스로 우리 모두는 겪어 보지 못한 일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에게 자기 공간이 생겼다. 대학생이 된 아들에게 학교 근처에 작은 공간을 선물해 주었고, 스물 살이 되면 무조건 독립하라던 약속대로 아들은 조금씩 자신의 독립을 기대하고 있었다. 스무 살 이상한 봄이 자꾸 길어지면서 미리 준비한 원룸을 더 이상 방치해 둘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부산 인근에 가구 전문 유명 쇼핑몰이 생겼다고 아들은 나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이왕 독립하는 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당장의 목표가 함께 쇼핑몰 가는 것이라 했다. 그도 그런 것이 나는 쇼핑을 무척 싫어한다. 많은 물건을 보면 선택 장애가 있기도 하거니와 넓은 공간 층층으로 번거롭게 카트를 밀고 다니는 것이 싫었다. 쇼핑몰 환한 형광등에 쉽게 피로를 느끼고 방전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번번이 입구에서 기다리거나 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기다리는 게 내 일이었다. 

아들은 차 안에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슬기로운 쇼핑을 마치려면 돈주머니 쥐고 있는 사람이 갑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나 보다. 하지만 쇼핑몰 가는 내내 나는 쇼핑을 싫어하는 이유와 다가올 스트레스를 줄지어 늘어놓고 있었다. 잠시 휴게소에 세워 달라는 아들이 얼음 가득한 카페라테 한 잔을 들고 온다. 빨대를 입에까지 넣어 준다. “왜왜... 왜 이래, 왜 이래......” 

“어머님, 쇼핑은 참 즐거운 일이에요. 내 베이비들이 선반 위에서 예쁜 자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잖아요. 자... 지금부터 쇼핑하는 방법을 어머님께 가르쳐 드릴게요. 이렇게 따라 하면 후회 없는 소비가 막 일어날 거예요. 잘 기억해 두시고 나중에 그대로 한번 해 봐요. 일. 매장을 한 바퀴 돌며 전체를 스캔하듯 구경한다. 이. 사고 싶은 것을 따로 봐 둔다. 삼. 살 것과 사지 않을 것에 대한 카테고리를 정한다. 사. 카테고리에 없는 것 중에 사고 싶은 것을 다시 본다. 오. 카테고리에 있는 것 중에 사고 싶은 것을 본다. 육. 사번과 오번 중에 살 것을 추린다. 칠. 가격을 서로 비교해 본다. 팔. 한 번 더 본다. 구. 혹시 내가 못 본 것 중에 좋은 게 있는지 한 번 더 본다. 십. 최종 결정한다. 십일. 계산한다......... 이런 걸 바로 합리적 충동구매라고 하는 거예요.”

“다 필요 없고... 두 개로 줄여!”

“네? 뭐라고요? 그렇다면... 본다! 그리고 계산한다! 그건 쇼핑에 대한 쿠데타에요.”  

“그럼... 세 개로 줄여!”

“본다! 계산한다! 후회한다! 인생 참 쉽게 사십니다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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