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라스트 풀 메저'

'라스트 풀 메저' 포스터.
'라스트 풀 메저' 포스터.

얼토당토않은 가정법적 질문이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이런 질문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으므로 대화가 길어지면 무 자르듯 툭 끊고 쉽게 잊기 마련이며,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일수록 전쟁이란 상황은 영화만큼이나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지구상의 다양한 세대 중에는 전쟁을 겪었거나 겪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라스트 풀 메저>는 1966년 베트남 전쟁 사상 최악의 미군 사상자를 낸 애블린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나 다른 장르에서 무수히 소비되던 바로 그 전쟁이라는 소재이며, 거기다 시작부터 끝까지 미국이라는 나라에 명분과 정당성이라고는 하나도 부여할 수 없는 베트남전이다. 떳떳하지 못한 전쟁에 그것도 패전의 역사이니 감추고 은폐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빛나는 명예의 흔적마저 지우려 했던 것일까.

주인공인 국방부 소속 변호사 스콧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며 베트남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없던 인물이다. 그가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남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각성해가는 과정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스콧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부채의식에 공감하고,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한 사람의 죽음을 명예롭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애블린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공군 항공대원 ‘피츠’에 대한 부채감이다. 살아남을 수 있었음에도 기꺼이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피츠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명예훈장 추서다. 피츠의 명예를 회복시킨다는, 이들이 30년도 더 지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이유는 평생을 끌고 온 자신들의 짐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흔한 스펙터클한 전쟁씬도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음악 역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영화의 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꼼꼼하게 쫓아가는데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없었으면 완성되기 힘든 줄거리다. 대배우들의 걸출한 연기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전쟁을 소재로 하되 전쟁 그 자체보다는 인간에 무게 중심을 둔 <라스트 풀 메저>는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전쟁과 그 전쟁 속의 휴머니즘을 이야기한다. 완전히 새로울 수는 없지만 전쟁 영화가 계속 제작되는 혹은 제작되어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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