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덕끄덕. 20×15. 2020.
끄덕끄덕. 20×15. 2020.

나에게는 비밀스러운 두 남자가 있다. 조용하게 동거가 시작된 지 벌써 십 년이 지났나 보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나 그 앞에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고, 이 남자 둘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 버렸다. 한 남자는 다재다능한 매력남이고, 다른 한 남자는 서정적이고 지적인 남자이다. 물론 두 남자는 서화(書畵)에도 능통해 깊은 밤을 나누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조맹부(趙孟頫)와 소동파(蘇東坡)다.   

간결한 행서(行書)로 써 내려간 작은 족자에는 원나라 문장가(조맹부)가 미소를 짓고, 소동파가 머리를 끄덕끄덕(수긍)한다는 “원장미소(元章微笑) 동파수긍(東波首肯)”이 쓰여 있었다. 갖고 싶어 마음을 졸였더니 직접 붓을 들어 써도 될 것을 저런다고 다들 의아해했다. 하지만 딱 저것이어야만 했던 것은 이유 없이 첫눈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 소환되어진 조맹부와 소동파를 상상했고, 어른의 존재에 갑자기 머릿속이 밝아져 버렸다. 두 남자의 저 표정만큼 더한 기쁨이 어디 있을까 여겼다. 예전에는 제자들 글씨 쓰는 서숙(書塾)에 걸어 두고 선생이 없어도 응원하는 남자 둘이 있으니 열심히들 하시라고 농을 쳤다. 얼마 전부터는 나의 서재에 걸어 두고서 오롯이 나만의 남자로 가두어 버렸다. 공부하며 밤을 새다가도 문득 바라봐졌고, 혼자 차를 마시면서도 한 번씩 쳐다보곤 했다. 나도 따라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견하다고 웃어주고 옳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남자를 갖게 된 후 더욱 힘을 내기 시작했다. 내 편이 있어 힘이 생겼다. 때로는 속 좁은 내 미운 짓에 속상해하며 동굴을 파고 앉아 있어도 곁에서 조용히 웃어 주었고, 거칠게 화를 내며 흥분해도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왜 그랬는지 묻지 않고 시간을 함께 기다려 주었다. 후에 감정이 가라앉아 부끄러운 곁눈질로 올려다보니 여전히 잘했다고 웃어주고 끄덕여 주었다. 그런 두 남자가 참 섹시하다고 여겼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많은 짐들이 있었나 보다. 거침없는 모습에 사람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것이라 생각했고, 다행히도 하나씩 해결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간혹 버거울 때 조용히 올려다보며 시선을 두는 곳이 있었다. “元章微笑. 東波首肯... 元章微笑. 東波首肯... 그렇게 난 자주 저 두 남자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갈고 붓을 담구니 “左靑龍趙孟頫 右白虎蘇東坡(좌청룡조맹부, 우백호소동파)”가 붓끝에서 쓰여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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