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2020년 4월 15일은 현행법상 4년마다 어김없이 앓아야 하는 국회의원 선거날입니다. 미덥지가 못한데, 억지로라도 마음의 결정을 하고 투표를 꼭 해야만 하는 걸까요. 억지로라도 투표를 하면 이번에는 뭔가 좀 바뀌고 좀 달라져서 부푼 기대를 해도 될는지요. 방송이고 마을 주민 센터고 선거관리위원회고 선거 운동원이고 모조리 투표는 국민의 신성한 권리라면서, 당당히 주권을 행사하라고 선전을 해댑니다. 이런저런 소리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도대체 지금까지 몇 번을 당하고 속았는데 또 투표 타령이야 하고 반문해 봅니다. 그럼에도 선거날이 다가올수록 신통찮은 고민의 늪에 빠집니다. ‘투표 안 하면 서민들이 겪는 힘겨운 현실은 어떻게 하나.’

소중하다는 그 한 표, 투표의 힘은 과연 정의로운가요. 그 힘을 받은 자들은 정의로움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여 쓸까요. 텔레비전이 비춰 주는 저 정치인들은 정의로운 나라, 정의로운 사회, 정의로운 삶을 위해 절박한 심정을 안고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는 걸까요. 우리가 말하는 정의는 우스갯소리로 원본을 두고 여러 장의 이본異本이 나도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서로 정의를 외치며 싸움질하는 볼썽사나운 짓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정의도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이라는 아전인수의 굴레를 되풀이해서 지켜봐야 하나요. 대립하고 갈등을 빚으며 서로 자신이 옳다고 떠들어대는 정의는 이대로 괜찮은 건지요. 의문이 끝없이 터져 나옵니다.

“쏘주가 중용이야.” 흙을 만지고 물을 흘리며 골짝을 지키고 가마를 지키며 살아온 한 인물이 어느 대낮에 저에게 뱉은 화두話頭였습니다. ‘아니, 이 무슨 겨자 묻은 손으로 사타구니 훑는 소리야’, 속으로 보인 저의 반응이었습니다. 그의 말투는 무슨 속내가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뚱딴지같이 좋은 밥 먹고 호랑나비 하품하는 소리는 왜 하는데.” 짐짓 모른 척하고는 있는 그대로 맞받았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며 허공을 메웠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일러 불학佛學에서는 여여如如라 하고 타타타tathatā라 합니다. 그와 저의 만남은 꾸미지 않은 하얀 백지를 바탕에 깐 것과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서로가 좋아한 덕분이겠지요. “아니 형, 쏘주燒酒이즈는중용中庸이다Soju is Golden mean, 그 말이가?” 그가 게슴츠레한 눈을 벙글며 “맨정신카마 정치하는 꼴 보무 이시키 저시키 욕밖에 안 나온다카이, 그 말씀 아잉교.” 투두둑 불만이 소음을 내며 쏟아집니다. 자기 뜻대로 안 풀린 문제가 있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이번에는 이놈 나을랑가 찍어 주모 헛빵이고. 저참에는 저놈이 나을랑가 해서 찍어 주모 그거또 헛빵이고. 내는 마 헛빵인생잉기라. 쏘주를 들이키지 않으모 욕만 쳐나오니 내 우찌 쏘주를 안 마시고 버티겠노. 근댜 희안허제. 쏘주 마시몬 금방꺼정 씨발 존만셰키 너들끼리 다해 쳐무우라, 하던 기 싸악 사라진다 이 말이여, 내 말이.”

소주 한 잔 꿀꺽하면 이놈 저놈 욕할 것도 없고 마음이 평온해져, 좌우 그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두고두고 귀에 쟁였습니다. 그가 토하는 걸걸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제자리를 찾은 듯 정신이 버쩍 듭니다. 머릿속에는 투표의 힘은 정의로워야 하며 정의를 위해 정의롭게 써야 한다는 문장으로 가득 찼습니다. 정의가 표방하는 가장 큰 역할은 불의를 심판하는 일인데, 그걸 못 했다는 자책이 어깨를 누릅니다.

정의가 걸어가는 길은 청결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공리를 위해 희생할 줄 모르고, 어둠의 장막 속에서 나쁜 짓만 일삼는 때깔 쓴 좀비들을 걸러내는 힘든 작업입니다. 힘들어도 고집스럽게 정의에 집착하는 의도는, 보이지 않지만 깨어 있는 국민들의 민주 의식이 우리나라를 똑바로 이끄는 디딤돌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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